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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한국 국적 버리라고? 너무 웃기잖아요

단어에는 그 정의와 함께 묘한 뉘앙스가 내포돼 있다.

2009년 이전에는 두 개 이상의 국적을 '이중국적'이라고 했다. 그랬던 것이 그해 10월부터는 '복수국적'이란 단어로 대체됐다.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적법 개정안에서 단어를 바꾼 것이다. 법무부는 표면적으로 이중국적자라는 용어가 3개 이상의 국적 소지자를 포함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속내는 개정안의 골자가 좋은 목적인, 해외우수인재 확보를 위한 것이어서 좋은 뉘앙스 단어를 고른 것이다.

사실 '이중'이라는 단어는 기회주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약삭빠르게 살피며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인상도 들어있다. 이중인격, 이중간첩, 이중플레이 등등. 특히 개정안에 이중국적이라는 표현이 포함될 경우, 국민의 반발(2007년 여론조사 결과 국민 64.4%가 싫어했다)을 예상한 것이기도 하다. 또 '허용'에서 '용인'으로 바뀐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허용에 비해 용인은 소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복수국적 용인'이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선천적 복수국적'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 혜택받는다는 느낌. 거기에 더해 허용을 뛰어넘는 뉘앙스의 '부여'라는 단어까지 결부됐다. (선천적) (복수국적) (부여). 좋은 뉘앙스의 세 단어가 쭉 연결되면서 일단 좋았다.



하지만, 그 멋진 어감의 말이 이후 수많은 한인 2ㆍ3세에 족쇄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 국적자였으면, 자녀는 선천적 복수국적을 부여받게 된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니(속지주의) 미국 국적과 한국인 부 또는 모에서 태어났으니(속인주의) 한국 국적 등 2개의 국적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거리낌없이 활동하며 개인의 확장성이 보다 넓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완전히 그 반대였다. 발목을 잡았다.

의도했건 안 했건 마치 덫을 놓고 기다렸다가 낚아채는 인상이다. 만 18세가 되는 해 3월31일까지 한국 국적을 버리지(이탈) 않으면, 한국의 병역의무가 쫓아다닌다.

자, 당사자인 아이들 입장에서 보자. 이곳 2세 아이들이 '만 18세가 되는 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태어난 연도ㆍ월일이 지나야 18세가 지났다고 여기는 미국에서, 18세가 되는 해라니? 또 '만'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왜 3월31일까지인가? 애매모호한 이 두세 가지 기준을 기억했다가 처리하라고? 갓 입학한 대학교 1학년으로 이것저것 정신없을 때인데? 어떤 서류를 내야하는 건데? 도대체 왜 하는 건데?

부모가 개입을 안 할 수가 없다. "안 하면 한국 군대에 갈 수 있다, 미국 정부기관 요직에 못 갈 수 있다"고 해봐야, 애들은 내심 'What the Fxxx! I don't care!'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부모는 나가떨어질 정도로 피곤하다. 한국에 혼인신고, 출생신고 안 했는데 굳이 지금 와서 하라고? 그리고 다시 다 없애라고? 뭐야 이것들? 국적상실신고?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참, 이혼했으면 어떻게 해야해? 10년 전 이혼했는데 어색하게 지금 만나서 혼인신고 해야돼? 웃기잖아! 웃기는 건 하나 더 있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한테 한국 이야기ㆍ역사 많이 알려주며 '뭔가 기여할 수 있으면 좋은 거'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와서 '잊지말고, 한국 국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해야 하다니!

한인 이민사회를 방문하면 항상 '정체성과 현지화'를 강조해온 국회의원님들! 한국 국적을 버려야만 현지화가 가능한 이 수수께끼를 당신은 풀 수 있겠습니까. 못 푸니까 여태껏 가만히 있는 거죠? 애들만 볼모로 잡아놓고. 너무 웃기잖아요.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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