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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 최다 이민자 독일계도 한때 숨어 살았다

워싱턴주 레븐워스 마을

워싱턴주 시애틀 동쪽 120마일 떨어진 독일 마을 레븐워스. 3000피트 넘는 케스케이드 산에 둘러싸인 산골 마을로 유럽의 알프스 마을 같다.

워싱턴주 시애틀 동쪽 120마일 떨어진 독일 마을 레븐워스. 3000피트 넘는 케스케이드 산에 둘러싸인 산골 마을로 유럽의 알프스 마을 같다.

1960년대 이후 반독감정이 사그러들기 시작하자 생존을 위해 독일식 마을을 조성하고 독일식 축제를 도입해 관광객을 유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반독감정이 사그러들기 시작하자 생존을 위해 독일식 마을을 조성하고 독일식 축제를 도입해 관광객을 유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7월 중순 무더운 캘리포니아 내륙을 빠져나와 오리건 해안 101번 프리웨이를 통해 북상하고 있었다. 경치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오리건 해안길은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오리건 북부 틸라묵 카운티에는 유명한 틸라묵 치즈공장이 있다. 이 치즈공장은 1909년 10여 명의 낙농농가가 공동출자해 회사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100여 곳의 지역 낙농농가가 참여해 운영하는 유명한 곳이다.

101번 길에 공장과 방문자 센터가 있어 이 길을 오르내리는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이곳에서는 치즈 제조 과정을 견학하고, 치즈를 이용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생산된 치즈 샘플을 무료로 시식할 수 있어 그야말로 여름 휴가철에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우리 부부도 RV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치즈를 시식할 수 있는 긴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 각지는 물론 외국에서 온 관광객도 많았다.



내 앞에는 터키계 미국인 아주머니와 터키에서 방문한 중년남자가 순서를 기다리며 터키말로 얘기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터키사람 앞에 서있던 키큰 백인 젊은이가 험한 얼굴로 터키인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옥토페스트 축제가 열리면 동네 주민들은 전통복장으로 거리를 다닌다.

옥토페스트 축제가 열리면 동네 주민들은 전통복장으로 거리를 다닌다.

잠시후 터키 아주머니가 우리를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영어로 말을 건넸다. 앞줄 백인 젊은이가 왜 미국에서 영어를 안쓰고 너희 나라말로 얘기하느냐는 항의를 했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외국사람 그것도 관광객이 자기들끼리 자국어로 얘기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민살이 하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라 어처구니 없었다.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치즈 시식도 하는 둥 마는 둥 씁쓸히 자리를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인종차별적 상황을 종종 맞닥뜨리는데 불쾌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미국은 일부 정치인이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공공연히 유색인종이나 외국인을 차별해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전세계가 일일생활권인 21세기에 일부 미국인들은 왜 전근대적 사고를 갖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미국은 1607년 영국의 상업 이민자들이 버지나아 제임스타운에 발을 내디딘 이후 주로 영국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정착했다. 미국은 독립이후 약 100년(1776-1875)동안 아무런 규제 없이 무제한 이민을 받았다. 그러다 이민자가 늘어나자 1882년 최초의 연방 이민법을 제정해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고 유럽인 이민자 중 범죄자, 광인, 저능자, 생활보호대상자를 규제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영국, 아일랜드, 독일, 이탈리아 같은 서유럽 국가와 북유럽 국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이어 1800년대 후반에는 동유럽과 남유럽 국가에 이민이 허용되었다. 1965년 개정 이민법이 시행되면서 동양인에게도 이민 문호가 개방되어 동양인 이민자가 붓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왔다.

전세계의 모든 국가와 인종이 모여사는 이민자가 세운 나라 미국이지만 이런 다양한 인종과 문화는 대도시를 벗어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도시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유색인종을 시기, 멸시, 박해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이민자 집단은 멕시칸도 잉글로 색슨도 아일리시도 아닌 독일계다. 독일계 미국인은 미국 인구 약 3억23000만 명 중 17.1%인 약 5500만명 이다.

2016년 미국 인구 조사 결과에는 백인(히스패닉계 백인 포함)이 전체 인구의 72.4%이다. 대략 미국인 6명 중 1명, 미국 백인 4명 중 1명은 독일계라는 어마어마한 통계다.

1848년 이후 1900년대 초반까지 800만 명 이상의 독일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독일계 이민자들은 대개 가난한 농부 출신으로 미국 중서부 농촌에 정착했다. 독일인들은 처음에는 독일어를 쓰고, 독일어 학교에 다니고, 맥주를 마시고 독일 명절을 지내며 문화를 계승했다. 1차 세계 대전 중 반독일주의가 팽배해져 길에서 독일인을 보면 침을 뱉었다. 미국식 분서갱유가 일어나 학교에서 독일어 사용이 금지되고, 독일어 책은 불태워졌다.

1918년부터는 영어전용운동이 일어나 35개 주가 영어로만 수업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계 미국인들은 영어식 이름을 쓰는 등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다. 대부분의 독일인 이민자들은 독일어, 독일 풍습이나 문화도 거의 잃어버렸다.

독일계 이민 3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조부도 미국으로 이민와 독일식 성인 Trumpf에서 미국식 표기인 Trump로 바꿨다. 지금도 대부분의 독일계 미국인들이 독일어를 할줄 모르고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이 드문 이유다.

틸라묵 치즈 공장에서 터키인에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윽박질렀던 백인 청년에게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미국인들의 인종과 민족에 대한 편견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 10월 독일 전통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리는 워싱턴주 시애틀 동쪽 120마일 떨어진 독일마을 레븐워스(Leavenworth)를 찾아갔다. 3000피트 넘는 케스케이드 산에 둘러싸인 독일 마을(Leavenworth)은 유럽의 알프스 마을 같았다.

인구 2000명이 채 안되는 작은 마을에 100개가 넘는 독일풍 건물에 기념품점, 독일식 맥주집, 소세지 가게 등이 늘어서 있었다. 여러 축제로 한해 10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답게 주차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1890년대 레븐워스에 도착한 백인과 독일인들은 인디언들을 쫓아내고 금을 채광하고 벌목과 농사를 했다. 이후 철도회사가 철수하고 쇠퇴해져 가난한 숨겨진 독일마을로 전락했다.

숨죽여 살던 독일인들이 1960년대 이후 반독감정이 사그러들기 시작하자 생존을 위해 독일식 마을을 조성하고 독일식 축제를 도입해 관광객을 유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공한 독일마을 레븐워스는 숨죽여 살며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독일인 이민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다.


신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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