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점심은 처음 보는 사람과 먹어야 하나
김석하의 스토리 시사용어 (1)
<중앙일보 5월27~6월7일>
◆가가함
'가가'는 원래 일본 제국주의 시절 항공모함의 이름이었다. 1921년 전함으로 진수한 가가함은 28년 항모로 고친 뒤 일본의 주력 항모로 활약했다. 32년 상하이 사변과 37년 중일 전쟁에도 참전했다. 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를 공습할 때 선봉에 선 게 가가함이었다. 그때까지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고, 태평양을 놓고 일본과 싸웠다. 가가함은 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 해군에 격침됐다. 당시 가가함이 가장 많은 폭탄(4발)을 맞았고, 인명 피해(832명 사망)가 가장 컸다.
가가함이 침몰한 지 73년 만인 2015년 8월 27일 2대 가가함이 진수했다. 가가함은 길이 248m·폭 38m에 만재배수량이 2만7000t이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갑판과 20대 안팎의 전투기를 넣을 크기의 격납고를 가졌다. 그래서 가가함은 '항모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이 항모로 쓰기 위해 건조했으며, 이름도 옛 항모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은 논란을 부인했다. '가가'라는 함명도 이시카와(石川)현의 옛 지명인 가가(加賀)에서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헌법상 제약 때문에 일본군을 '자위대(自衛隊)'라 부르는 것처럼, 항공모함 급인 가가함에 '헬기탑재 호위함'이라 명칭을 붙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1920년대 이미 항공모함을 거느리고 있던 일본의 '재무장'에 한국과 중국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만찬의 주인공' 와인에는 한 병에 1400파운드(약 1800달러)짜리 샤토 라피트 로칠드(사진)가 포함됐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보르도 레드와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품종으로 만든다. 기품있고, 아주 매끄럽고 부드러우면서도 산미와 타닌이 건재한 이 와인은 1855년 등급 심사에서 메독 프르미에 크뤼에 선정된 4종 중 하나다. 라피트를 소재로 하여 2008년 출간된 '억만장자의 식초'는 초반에 와인 경매장의 열기를 묘사하고 있다.
1985년 12월 5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을 가득 메운 입찰자들의 관심은 오직 단 한 병에만 쏠려 있었다. 약 200년 묵은 와인 한 병이 출품되었는데 여러 사람의 경합으로 결국 15만6000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가격은 와인 경매 사상 최고의 낙찰 가격이란 기록을 남겼다. 와인 한 병에 15만 달러가 넘다니 한 잔에 약 2만 달러는 넘는다는 말이다. 낙찰된 와인은 1787년 빈티지의 샤토 라피트 로칠드였다. 낙찰자는 미국 잡지 포브스의 일가.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와인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라피트를 기억하라.
◆로드 다이어트(Road Diet)
'빠른 길? 안전한 길? 그것이 문제다'.
2년 전 부실한 자동차 도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개스요금에 포함시켜 올린 세금이 오히려 차량의 흐름을 막아 교통 체증을 유발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차도를 정비하겠다고 조성한 수백만 달러의 세금이 일부 도시에서는 '로드 다이어트(road diet)'라는 이름 아래 차선의 숫자나 폭을 줄이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운전자들은 보다 원활한 교통을 위해 지불하는 개스세 인상이 실제로 교통 혼잡을 증가시키는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납세자협회 데이비드 울프는 "예산이 도로의 유지보수에 쓰인다고 들었다. 원하는 것은 도로 보수다. 납세자들의 돈으로 도로를 없애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새크라멘토·라퀸타·샌루이스오비스포 같은 도시들은 차선 통제로 교통량을 줄임으로써 도로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고 있으며 만족해 하고 있다. 연방 고속도로 관리국(FHA)의 2010년 연구에 따르면 가주와 워싱턴주에서 로드 다이어트 덕분에 차량사고가 19%, 아이오와주는 47%가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로드 다이어트 법안으로 가주 전역에 걸쳐서 첫 해에는 갤런당 12센트가 부과됐지만, 오는 7월1일부터 갤런당 추가로 5.6센트가 더 올라가게 된다.
◆'버핏과의 점심'
'월요 병'을 피하는 방법은 딱 하나. '월요일 점심의 설렘'을 갖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일요일 저녁은 우울하다(sunday blues). 휴식이 끝나는 언저리, 노동의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 연구팀은 16세 이상 1만2000명의 인터뷰 자료를 분석, "성별·연령에 관계없이 통계적으로 가장 덜 행복한 요일은 일요일"이라고 결론지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일요일은 인터넷에 자살 관련 언급이 가장 많이 올라오는 요일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강연에서 "직업적 위기감은 일요일 저녁에 찾아온다"고 했다. 그렇다고 휴일 막판에 기분을 내보려고 뭔가를 시도해도 대부분 소용이 없다. 머리는 이미 월요일 할 일과 그 스피드를 따라잡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구가 있긴 하다. 일요일 저녁, 즐거운 월요일 점심(월점)을 기다리는 것이다. 농경시대 농민의 육(肉)적 배고픔은, 자본주의 직장인의 심(心)적 배고픔이다. 관심·취미가 같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화제를 이야기하고, 평상시 잘 안 먹던 새 메뉴를 함께한다는 월요일 점심의 설렘은 일요일 우울감을 완화한다.
그런데 그 점심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와 함께라면….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8·사진)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올해 행사의 가격이 456만7888달러에 낙찰돼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최종 낙찰자는 암호화폐 거래에 쓰이는 블록체인 플랫폼 중 하나인 트론을 창업한 저스틴 선(28) CEO다. 이 행사는 매년 경매 형식으로 이뤄진다. 경매 수익은 샌프란시스코 빈민 구제단체 글라이드 재단에 전액 전달된다. 버핏 회장은 이 행사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낙찰자는 뉴욕 맨해튼의 스테이크 전문식당 '스미스 앤드 월런스키'에서 버핏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게 되며 최대 7명의 일행을 동반할 수 있다.
한편, 버핏 회장은 점심식사에 대해 한마디를 남겼다. "점심은 항상 처음 보는 사람과 먹어라."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예술·문화적 성취도 현실 정치 세계에서는 상대편 때리기 방편으로 사용된다. 봉준호 감독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자 한국 정치권이 진영 싸움의 카드로 활용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 경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다시 본다"고 언급하면서 봉 감독이 과거 칸 영화제에 참석해 '한국 예술가들의 블랙리스트 트라우마'를 언급한 기사와, 그해 9월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공개한 '문예계 내 좌성향 인물 현황' 일명 블랙리스트 관련 기사를 내보였다. 봉 감독은 명단에 포함돼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사진)'에서 알랭 들롱의 역할이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거짓말이 아닌 진실로 믿는 톰 리플리"라며 "문재인 정부가 '지금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계속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리플리 증후군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톰 리플리가 친구이자 재벌의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리플리가 아닌 그린리프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연극은 막을 내린다.
1966년에는 알랭 들롱 주연의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큰 인기를 끌었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상을 믿으며, 거짓말과 행동을 일상으로 하는 인격 장애를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정은6
이정은(23·사진)이 지난 2일 US여자오픈에서 합계 6언더파 278타로 역전 우승했다.
그런데 경기 공식 이름이 '이정은6'다. 이정은이란 이름은 한국 여성에게는 매우 흔한 이름 중 하나. 동명이인이 많다. 그래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는 같은 이름의 선수가 등장하면 등록 순서에 따라 이름 뒤에 2, 3, 4 등의 숫자를 붙인다. 한국에서는 이름 뒤에 6를 붙이고 다녀야 했다. LPGA로 가면서 번호표를 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숫자 '6'을 달고 갔다. 미국인들은 이름 뒤에 숫자를 붙인걸 매우 신기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정은6은 "6을 붙인 뒤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면서 아예 별명도 '핫식스'로 했다.
미국 프로풋볼(NFL)에서도 '숫자 이름'이 등장한 적이 있다. 신시내티 뱅갈스의 와이드 리시버인 채드 존슨(Chad Johnson)은 2006년 오초싱코(Ochocinco)로 개명했다. 오초싱코(Ochocinco)는 스패니시로 숫자 8과 5를 뜻하는데, 그의 등 번호가 85번이었기 때문이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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