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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6·25를 잊지말자

김종회 / 전 (사)과학문화연구원 연구위원 겸 이사

오늘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9년이 되는 날이다. 북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도당이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명목으로 감행한 기습 남침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사 중에서 가장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69년이 된 6·25 전쟁은 흐릿하게 기억될 뿐,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6·25 전쟁으로 인해 민족의 분열과 대립은 심화됐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대한민국'을, 북한은 공산 독재주의 체제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 남북분단 체제로 갈려지게 됐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느냐를 두고, 북조선(북한)의 남침이라는 전통적 시각과 남북 쌍방의 책임 또는 남침 유도라는 수정주의적 시각이 함께 존재해 왔다. 전자는 소련의 사주에 의한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미국과 남한이 남침을 유도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탈냉전으로 구소련의 외교문서가 공개됨으로써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한반도 공산화 의지가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는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회고록을 통해 고백한 것과 일치한다. 중국조차 1996년 7월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전쟁으로 역사교과서를 수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단순히 김일성 한 사람의 야욕뿐만이 아니라 동서 냉전의 태동기라는 국제 정치적 전환점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국제정세의 흐름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과 미국이 확고한 의지와 준비를 하고 있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은 애치슨라인을 통해 한국을 방위선에서 제외하였고, 전쟁 발발 며칠 전까지도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작게 평가하였다.

결국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야욕과 소련의 팽창주의 그리고 한미관계의 약화, 한국의 군사적 대비 미비 등에 의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통일은 어디까지나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고 있다. 따라서 제2의 한국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적 환경변화와 우리 스스로 군사적 대비를 해야 하며, 특히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계속 공고히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정부나 요즘 젊은 세대들이 6·25 참전용사에 대한 평가나 예우가 너무 소홀하다는 점이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예우자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다.

지난 69년간 대한민국은 수많은 난관과 애로사항을 극복하며 국민소득 3만 불시대로 발전하였다. 만에 하나, 공산국가가 되었더라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는가.

온 국민은 상기(기억)해야 한다. 우리 아군이 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가 대한민국의 운명이 그야말로 풍전등화 같았던 순간을!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눈물나는 군가였다.

유비무환은 진리다. 내일이면 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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