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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미군들 "늦기 전에 한국전 기록"

[LA중앙일보] 발행 2019/06/25 미주판 2면 기사입력 2019/06/24 21:18

67년 전 '철의 삼각지' 파병된
니시다씨 등 하와이 출신 뭉쳐
생존 참전군인들 육성 인터뷰
"잊히면 두번째 전사하는 것"

한국전 참전용사 워렌 니시다(오른쪽)와 모세 카알쿨루(왼쪽)가 당시 전쟁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마우이 뉴스 제공]

한국전 참전용사 워렌 니시다(오른쪽)와 모세 카알쿨루(왼쪽)가 당시 전쟁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마우이 뉴스 제공]

"참전용사는 두 번 죽습니다. 전장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잊힐 때입니다."

24일 하와이 지역언론 '마우이뉴스(The Maui News)'는 한국전 역사를 지키고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들에 대해 보도했다.

지난 1952년 10월 16일. 67년이 흘렀지만 워렌 니시다(89)씨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그는 "부상을 입고 쓰러진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와 준 병장과 간호병이 눈 앞에서 포탄에 맞아 죽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가장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고 처참한 전장이었던 '철의 삼각지'에서 싸웠다. 철원.김화.평강군을 잇는 삼각 지대에서 수도고지 전투, 지형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백마고지에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벌어진 싸움에서 승자가 24차례나 바뀌었다. 1만 4000명에 가까운 군인이 죽거나 다쳤고, 쏟아진 포탄만 해도 30만 발이 넘었다.

당시 22살 청년 니시다는 목숨 바쳐 싸운 한국 전사들과 그 참담한 전장을 함께했다.

그는 하와이 마우이 지역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1951년 9월 한국전에 징집됐고, 같은 해 12월 그는 미군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당시 육군 7사단 32 보병연대에 소속된 그는 악명높은 김화에 배치됐다. 지금의 38선 인근에서 적군 포섭을 위해 북한 영토로 위험한 정찰을 감행했으며 매복 순찰을 수행했다.

한번은 발사된 박격포를 맞고 부상을 입었고 도와주러 온 병장과 간호병이 눈앞에서 날아온 포탄에 목숨을 잃었다. 정신을 잃고 차리기를 반복, 당시 니시다씨는 분대장에게 극적으로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이후 그는 도쿄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12차례에 걸쳐 피부.뼈 이식을 받아야 했다.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됐지만 니시다씨에게 전쟁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는 "참전 용사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순간, 그건 전장에 이어 두 번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최근 마우이에선 한국전의 참상을 기록하고 참전용사들의 위업을 기억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했던 일본계 군인들이 뭉쳤다. 참전용사인 마이크 타카마쓰씨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데이비드 푸쿠다씨와 함께 한국전 전시회를 마우이에서 개최한다.

다카마쓰씨는 "처음에는 난관이 많았다. 참전용사들을 찾기가 어려웠다"며 "그들을 만나 군복무 전 무슨 일을 했는지, 전후 삶은 어땠는지 초점을 두고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그는 20여 명의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7년 전 한국전 참전용사 모임에 참여했을 당시 51명이던 참전용사는 현재 37명으로 그 수가 점점 줄고 있다고 밝히며 참전용사들을 기록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회는 9월 중 카홀루이 지역에 있는 니세베테런스메모리얼센터(NVMC)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마우이 지역 일본계 한국전참전용사협회 '노카오이 282 챕터(No Ka Oi 282 Chapter)'는 오늘(25일) 카훌루이의 전쟁기념경기장(War Memorial Stadium)에서 한국전 추모행사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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