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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신(神)을 위한 건물은 무용하다

짓는다는 점에서 종교와 건축은 닮은 데가 있다.

건축은 축조의 행위를 통한 영역의 창출이다. 짓는 의도가 곧 본질이다. 공간마다 의미를 담는다. 종교는 신념으로 짓는 경건한 노동의 영역이다. 내면 가운데 절대자를 위한 자리를 형성하고 그곳에 신앙을 쌓아간다.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승효상은 두 개념을 하나로 잇는다. 그는 올해 경북의 하양 무학로 교회를 지었다.

평소 승효상은 "공간을 채우지 말고 비워내자"는 건축론을 내세운다. 그가 주창해온 '빈자(貧者)의 미학'이다.



교인이 30여 명 뿐인 이 교회는 내외관에 그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15평 크기의 예배당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신앙적 행위에만 충실하겠다는 의지다.

대신 교회 마당은 쉼터로 열어뒀다. 나무 그늘 아래 벽돌 의자를 두고 동네 주민이 오다가다 쉴 수 있게 했다. 담을 허물고 소통하겠다는 의미다.

신(神)을 위한 봉헌의 의미로만 인식됐던 종교 건물은 이제 무용하다. 웅장하고 화려할수록 시든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최근 월간 잡지 '디 애틀랜틱'은 "미국에서만 매해 6000~1만 개의 교회가 건물을 유지하기 어려워 재정 위기에 처한다"고 보도했다.

사람들은 갈수록 종교와 멀어지고 있다. 종교계에선 심지어 '넌스(nones)'라는 단어가 신조어로 떠올랐다. 특정 종교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을 일컫는 용어다.

사람이 없는 건물은 역할을 상실한다. 종교계에 대한 외면은 곧 출석률 감소로 이어진다. 돈(헌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커진 건물을 유지하는 건 버거운 일이다.

이미 교회가 기능을 잃고 용도가 바뀐 사례는 수두룩하다. 얼마 전 LA지역 필그림교회(1629 N. Griffith Park Blvd.)도 결국 문을 닫고 중고 가구점으로 용도가 전환됐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50여 년 만에 미국 내 종교 기관 건축 비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만큼 종교적 기능만 갖춘 건축물은 과거와 달리 효용성이 미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일부 교회는 차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유산으로 '건축'을 택한다. 오늘날 기조에 비추어보면 분명 오판이다.

다음 세대는 건물이 아닌 가치를 좇는다. 한 예로 젊은 기독인들이 모인 싱크탱크 미셔널위스덤파운데이션의 실험적 교회 운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단체는 교인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댈러스 지역 화이트락연합감리교회(6만 스퀘어피트)를 도왔다. 기본적인 원인부터 분석했다. 교회 운영을 두고 일주일(168시간)을 쪼개보니 교인이 건물을 온전히 점유하는 시간은 24시간이 채 안됐다.

이들은 종교적 기능에만 국한돼있던 건물에 가치를 부여했다. 사회와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접촉점을 찾고 동시에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교회는 시간 활용을 위해 과감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교회 공간이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장, 아프리카 난민의 영어 교실, 비즈니스 세미나, 지역 사회를 위한 운동 장소 등 다목적으로 쓰이자 서서히 수익이 창출됐고 건물은 생기를 얻었다.

일정 수익은 다시 사회로 환원하고, 교회는 건물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기독교의 가치를 자연스레 전할 수 있는 명분도 얻었다.

얼마 전 새롭게 문을 연 가든그로브 지역 '그리스도 대성당(Christ Cathedral)'을 찾아갔다. 개신교의 '수정교회'가 파산한 뒤 현재는 가톨릭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화려한 건물만큼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 건축물 앞에서 교회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봤다.

건물은 종교의 성쇠를 품고 있다. 이제는 외관의 이면을 직시할 때다.


장열 사회부·종교담당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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