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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박자 아리랑 한국 오니 4/4박자"

LA 방문한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씨
한인 교회 돌며 간증…“두고 온 가족 걱정”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씨가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국제악기박람회(NAMM)를 둘러보던 중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다.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씨가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국제악기박람회(NAMM)를 둘러보던 중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다.

가슴 한 편이 아리고 쓰렸을까. 피아노 앞에 말 없이 앉아있던 황상혁(46·사진)씨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건반 위에 손을 올리자 이내 ‘아리랑’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지난 17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악기박람회(NAMM)에서 황씨가 무심코 친 피아노 연주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구슬프게 흩날리는 아리랑은 그의 심경을 대신한다.

황씨는 탈북 피아니스트다. 지난 2014년 ‘북한 유명 예술가의 탈북’ 소식으로 온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인물이다.

북한에서 평양음대 교수와 예술 전문가 대표단까지 지낸 그는 대중 앞에 서는 게 가장 두렵다. 모순이다.



“지금 내 삶이 그래요. 내가 '살겠다’며 모습을 드러내면 평양에 두고 온 가족을 옥죄일 수 있고, 내가 피아노라도 안치면 한국서 먹고 사는 게 어려워지고…그 모순에 괴롭습니다.”

황씨는 한시라도 머릿속에서 가족을 지운 적이 없다. 노모와 아내, 그리고 아들 하나다.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자리한 그리움은 한국서 생계를 위한 몸부림을 자꾸만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홀로 텅 빈 집에서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울 때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이유다.

“(탈북 결심 당시) 북한 보위부에서 한국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유로 나를 조사할 거라는 말을 들었죠. 솔직히 처벌이 두려웠어요. 차라리 북한에 가서 자수할까 고민도 했죠. 그때 한 브로커가 미국행을 약속했었는데 한국만 안 가면 가족이 다치지 않을 거라 판단했어요. 나중에 보니 결국 꼬임이었고 약속은 다 거짓이었어요.”

상처로 점철된 운명은 기구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 그는 원인 모를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12일이 지나서야 의식이 회복됐을 만큼 중상이었다. 사고 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CCTV의 사각지대였다.

처음엔 손가락이 말을 안 들었다. 평생 연주 해 온 피아노를 버릴 수 없었다. 그럴수록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매진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전공 과정까지 수료했다.

예술가는 대중과 교감해야 한다. 다만, 북한 정세에 민감한 한국 땅에서는 모습을 드러낼수록 두고온 가족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강박에서 헤어나는 게 쉽지 않다. 그는 모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미국에 오고 싶다”고 했다.

황씨의 사연을 접한 미국의 몇몇 한인 교인들과 음악계 종사자들이 그의 이번 방문을 도왔다. 남가주사랑의교회, 베델한인교회, 기쁜우리교회, 은혜한인교회 등에서 피아노 연주와 간증의 시간도 가졌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가 불쑥 “한국과 북한의 아리랑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걸 아느냐”고 물었다.

“박자가 달라요. 북한은 3/4박자인데, 한국에서는 4/4박자가 쓰입니다. 내가 연주한 건 그 두 개를 합쳐 편곡한 것이에요. 언젠가는 이 연주를 가족 앞에서 기쁨으로 할 수 있겠지요. 연주를 할 때마다 나로 인해 가족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무사해야 할 텐데….”

그는 지금 애환의 아리랑 고개를 넘고 있다.

☞황상혁씨는

북한서 평양예술전문학교, 평양음악무용대학 등을 졸업한 엘리트 예술인이다. 북한 최고의 피아노 연주가이자 교육가로 알려진 이경린의 제자이기도 하다. 14살에는 평양음악무용대 기악과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다. 이후 그는 평양음악무용대학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북한 최고위층 자녀들을 가르쳤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예술 교육 전문가 대표단으로 중국에 파견됐다가 귀환을 며칠 앞두고 지난 2014년 탈북ㆍ망명길에 올랐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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