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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미의 쓰레기 재활용 차이

한국에서 나고 자라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미국에 처음 가봤다. 직장인을 위한 단기 어학연수 코스였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흘가량 머물렀다. 무척이나 즐거웠고, 영어 실력도 조금 늘었고, 지금까지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금문교도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도 아니었다. 무지막지하게 버려대는 그네들의 쓰레기였다. 게다가 그들은 분리 배출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음식물·플라스틱·종이, 심지어 남은 음료수까지도 그냥 거대한 쓰레기통 하나에 버렸다. 샌프란시스코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쓰레기 재활용률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데도 그랬다. 허탈하기도 했고 배신감도 느꼈다. 이 큰 나라에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버리는데 한국인들이 열심히 분리 배출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도 미국의 쓰레기 배출 문제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고,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미국에서 쓰레기를 버리다가 놀란다. OECD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생활 쓰레기 재활용률은 59%인데, 미국은 35%에 그친다. 쓰레기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버리는 이들이 전기차가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떠드는 건 위선 아닌가 하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단기 연수를 다녀왔을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체가 일주일에 딱 하루, 평일 아침에 단지에 찾아왔다. 그 전날 저녁부터 당일 새벽 사이에 아파트 단지 앞마당에 주민들이 재활용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가 모았다. 야근을 하고 녹초가 되어 침대에 바로 쓰러지고 싶은 밤이라도, 집에 일주일 더 쓰레기를 놔두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자정 즈음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뚱한 얼굴로 쓰레기를 버리고 있었다. 종이 쓰레기는 작은 산처럼 쌓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한국 도시 노동자들이 환경을 위해 미국인들보다 그만큼 더 무료 노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한국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 지침, 너무 복잡하지 않나? 매번 헷갈린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에는 새벽까지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특히 유리병이 다른 유리병에 부딪히는 소리는 꽤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다 유리 깨지는 소리라도 들리면,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표현하면 과장이겠지만 잠은 충분히 설쳤다.

이후로 10여 년이 지났고, 나는 이사를 두 번 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게 한결 낫다. 지하 주차장 한 곳에 자리를 마련해 모아둔다. 보기에는 썩 좋지 않아도 주민들은 편하다. 수거 차량이 언제 오는지 신경 쓰지 않고 언제든 시간 날 때 쓰레기를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중요한 판결도 나고, 정부 지침도 바뀌었다. 법원은 2018년 아파트 경비원도 경비업법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거나 택배를 대신 받는 등 경비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면 불법이라는 의미다. 올해까지는 계도 기간이다.

나는 한국의 재활용 쓰레기 정책이 자랑스럽다. 세계의 모범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시민들이 덜 피곤하게 정책을 세심히 다듬을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관이 규칙을 정한 뒤 시민들이 따라오게 만들지 말고, 반대로 시민들이 정책 서비스를 누리는 형태로 바꿀 수는 없을까.

전국 도시 곳곳에서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을 맡아 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지원하면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들이 한숨 돌리지 않을까. 아이들을 아침에 집에서 어린이집이나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오후에 집으로 데리고 오는 사회적 기업이 많아지면 젊은 부부의 삶이 얼마나 더 여유로워질까. 일자리도 창출되고 말이다. 기본 소득에 비하면 도입 재원도 훨씬 적게 들 것 같은데.


장강명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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