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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는 연습도 필요하다

지고 싶다는 소망을 간절하게 가져본 적이 있는가? 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일부러 져주는 인정(人情)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인 전략적 상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기려는 욕망이 괴물처럼 자라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이겨야만 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지지 않는 사람들은 이기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때로는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이겨야만 큰 성공이 뒤따르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절대 지지 않는다. 아니 지지 못한다. 사소한 영역에서조차 그렇다. 자신이 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본능적으로 편법을 도모한다. 천성이 악해서가 아니라, 이기는 습관이 DNA처럼 새겨진 탓에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불행한 괴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지 않는 사람들은 삶의 전 영역을 이기는 영역으로 채운다. 공적인 영역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자신이 그 중심에 서기를 원한다.

지지 않는 사람들의 가장 큰 흠은 갈등을 풀어가는 지혜와 진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 않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에 관계를 끊는 파국적 선택으로 갈등을 종결해버린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본때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임에도 반드시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야 만다.



이들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자신들의 파국적 선택을 반성한다는 점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뇌와 과오를 토로하면서 겸손함이라는 승리까지 거머쥔다. 이미 그들의 손에 의해 잘려나간 사람들은 이 괴물들을 위한 성찰과 겸손의 예식에 또다시 희생당하는 것이다. 지지 않는 괴물들의 깔끔한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 무섭지만 따뜻한 사람이라는 양가적 이미지가 붙여진 이유다.

지지 않는 이 괴물이 자기 안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살고 있다는 절망을 가져본 사람들이라야 지고 싶다는 소망의 간절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지고 싶어도 지지 못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기는 연습만을 시킨다. 이기는 습관은 성공의 상징이 되었고, 이기지 못한 자의 아픔을 보듬는 일은 성공한 자의 미덕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큰 문제들은 이기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지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다. 질 줄도 모르고 져본 적도 없는 자들의 감정싸움 때문에 원만히 해결될 문제가 악화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자들과 엘리트들의 일탈은 지지 못하는 그들의 고질병 때문이 아니던가.

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져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져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연습 방법은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영역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초보인 영역에 직접 들어가 고수나 스승들을 만나봐야 한다. 내 삶에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 영역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지 않는 괴물들은 그런 영역조차 자기가 주도해서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가 주도해서 만든 초보 영역은 또 하나의 지지 않는 영역이 될 뿐이다. 주도하지 말고 끌려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는 영역이 있는 사람에게는 정직함이 있고 여유가 있으며 따뜻함이 있다. 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공은 있을지 몰라도 진심이 없다. 타인에 대한 애정도 심각하게 부족하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자기가 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수단일 뿐이다. 지는 연습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야 지는 사람들을 보듬을 수 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이렇게 바꿔서라도, 이제부터 지는 연습을 충실히 하고 싶다.

‘나는 지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지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최인철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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