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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손자의 자신감 띄우기

버뱅크 공항으로 달린다. 단거리 여행을 할 때에는 간단한 짐을 챙기면서 마음이 붕 떠 자연히 신선한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비행기가 공중으로 나르기 전 활주로에서 1분 30초쯤 천천히 돈다. 나는 물끄러미 차창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있다. 안전한 활주로 방향을 안내하는 사람, 기상 수송원이 계속 도착하고, 출발하는 비행기에 짐을 실린다. 돌아오고 떠나는 비행기에서 쏟아져 겹쳐지는 짐짝들을 보며 사람의 생각도 실리고 떠나며 재조정되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비행기 좌석 순위가 객실 앞쪽이라 모자이크 창밖의 광경을 잘 볼 수 있었다. 탑승객을 태운 비행기는 서서히 활주로를 돌다가 발착시점을 알리는 빨간 점선 쪽으로 향하더니, 땅을 박차고 상공으로 떠올랐다. 134명을 태운 사우스웨스트 비행기는 잠깐 사이에 승객 모두를 양력(Lifting)해서 푸른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부동자세로 올려지며 순간 생각에 머문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를 위해서 리프팅을 한 적이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해보았다. 도움만 받고 베풀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공연히 구름을 뚫고 가듯 가슴 속이 휑하니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북가주에 사는 손자와 손녀를 보러 간다. 딸의 가족과 둘러앉아 UNO 게임을 하며 재미있게 놀던 중 손자와 3살 위인 누나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승부에 민감한 나이어서 그런지 손자는 지는 것을 못 참는다. 그 광경을 보고만 있기에는 할머니로서의 훈계 본능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손자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 같은 방문객이며, 항상 귀여워만 하고 얼굴을 쓰다듬고, 등만 다독여 주고, 하하 웃으며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새해로 한 살을 더 먹은 때문인지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부모 다음으로 할머니도 손자, 손녀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이 떠올랐다. 아마 일생동안 교육자로 지내온 배경에서 나온 교육자 정신이 모르는 사이에 내 방식대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들, 노숙자가 되어 길에서 눈비를 맞으며 사는 사람들, 학대받는 어린 아이들의 얘기를 하면서 평소에 하지않던 긴 이야기를 했다. 이제 9살 된 손자 녀석은 얘기의 내용을 알아들었는지 눈시울이 발갛게 되면서,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렸다. 눈물이 소통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 셋은 모두 화해의 기분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손자가 약속한 2018년의 서약을 벽에다 부쳤다. '정직해라. 사람들에게 친절해라.'

돌아오는 길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이다. 손자가 쓴 반성문이 지갑 속에 들어 있었다. '할머니 잘못했어요. 이 돈은 할머니가 더 필요할 것 같아 다시 드려요.' 장난감 사라고 준 용돈을 두 마디 작은 글씨와 함께 내 지갑에 다시 넣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손자에게 할머니 말을 다소곳이 들었던 손자를 칭찬하고 손자의 자신감을 리프트 하는 편지 한 장을 쓰기로 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 할머니의 젖은 우편봉투가 하늘 뜰을 날아서 손자 손에 쥐어지는 것이 뿌듯했다. "손자야, 할머니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 편지에 쓴 내용이 하늘에서 뽀얀 구름으로 새겨져 회색구름이 벗겨진다. 오늘은 누나와 사이 좋게 지낼 거지?


정정숙 이사 / 한국어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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