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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슬픈 역사 치유하는 '음식의 힘'

음식 통해 단절된 가족관계 회복하는 과정 담아
싱가포르 영화 르네상스 주역 에릭 쿠 감독 작품
일본-싱가포르 수교 50주년 기념 프로젝트

음식을 통해 가족의 화합을 그린 에릭 쿠 감독의 ‘라멘샵.’. 주인공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라면 가게는 언제나 손님들로 가득했다. [Strand Releasing]

음식을 통해 가족의 화합을 그린 에릭 쿠 감독의 ‘라멘샵.’. 주인공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라면 가게는 언제나 손님들로 가득했다. [Strand Releasing]

라멘샵(Ramen Teh)

감독: 에릭 쿠
출연: 사이토 다쿠미, 이라하 쓰요시, 재닛 아우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0분


에릭 쿠(Eric Khoo) 감독은 90년대 일어난 싱가포르 영화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싱가포르 영화계의 대표격인 그가 연출한 영화들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거론되었고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등에 출품되어 왔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쿠 감독의 최신작 '라멘샵(Ramen Teh)'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으로 채워주는 가족 드라마이다. 그 감동은 음식으로 대입된 흥미로움, 가족 간의 애틋한 사랑으로 표현된다.

에릭 쿠는 1995년 국숫집 주인 남자와 매춘부의 운명적 사랑을 그린, 그의 첫 장편 영화 '면로(Mee Pok Man)'로 싱가포르 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다. 당시의 싱가포르는 연간 고작 4, 5편 정도의 영화가 제작되는 영화 미개발국이었다. 쿠의 이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좋은 평을 받으면서 싱가포르 영화 산업 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쿠의 영화에는 음식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쿠는 음식을 통하여 오늘의 싱가포르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혼자 앉아 있는 식탁, 그 장면에서 보이는 주인공들의 고독은 그가 주로 사용하는 영화의 모티브다. 라멘샵에서는 아예 음식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마사토(사이토 다쿠미)는 삼촌(벳쇼 데쓰야)과 함께 아버지(이하라 쓰요시)의 라면 가게 일을 도우며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다. 평생 라면밖에 모르고 살아온 아버지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난다. '라면의 장인' 이었던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늘 슬픔에 잠겨 있었다.

마사토는 아버지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20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재닛 아우)의 일기장과 사진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날아온 외삼촌의 편지를 발견한다. 마사토의 어머니는 싱가포르 여성이었다. 아버지가 싱가포르에서 지낼 때 만나 결혼했고 마사토가 열살 때 세상을 떠났다. 마사토는 외삼촌(마크 리)과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사토는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인 맛집 블로거 미키(마쓰다 세이코)의 도움을 받아 싱가포르 전통 음식인 '바쿠테(Bak Kut Teh)'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외삼촌과 할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일본 요리사였던 아버지와 싱가포르의 전통 맛집의 딸인 어머니의 가정 사이에 얽혀 있던 슬픈 사연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20년 동안 단절되었던 외가 식구들과의 사이에 다소의 갈등의 빚어지지만 마사토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두 가정의 화해를 이루겠다는 마음을 키우며 삼촌으로부터 열심히 바쿠데 레시피를 배운다. 마사토에 의해 라면과 바쿠테가 하나로 혼합되고 융화되면서 갈라섰던 가족들은 조금씩 서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음식에 가족의 혼이 더해지고 마음의 벽들이 허물어지면서 다시 가족의 정을 나누게 된다. 라멘테(라면과 바쿠테의 합성어)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두 가정의 영혼이 담겨있는 음식이 매개체 역할을 해내고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된다.

쿠의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패밀리 레시피다. 냉랭했던 마음을 녹이고 채워주는 사람의 혼이 담겨 있기에 '소울푸드'란 표현이 어울린다. 영화는 음식을 통해 가족의 사연을 그려낸다. 음식은 잃어버린 가족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화해와 소통을 이루어낸다. 라멘, 바쿠테, 칠리크랩, 피시헤드커리 등의 '등장 인물들'은 일본과 싱가포르라는 두 나라 간의 새로운 교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음식을 통해 '맛의 천국'을 자처하는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며 지난 세월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배경인 싱가포르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일품이다. 북미회담 때 보았던 싱가포르의 화려함에 대비되는 서민적 정취와 인간미가 영화를 한껏 살린다. '라멘샵'은 일본과 싱가포르의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을 기념한 프로젝트다.


김정·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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