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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최 “어릴 땐 LA-한국 오가며 정체성 혼란도”

할리우드 잡지 ‘버라이어티’ 기고

작년 4월 통역 요청 연락받고
방광이 1시간 버텨주길 기도
봉 감독 논문 썼던 게 도움

“2019년 4월, 봉준호 감독의 전화 인터뷰를 통역해달라는 e메일을 받았다.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느라 e메일을 늦게 확인해 인터뷰는 이미 지나간 터였다. ‘향후 일정은 가능하니 연락 달라’고 답장했고, 며칠 뒤 연락이 왔다. 가장 좋아하는 메모지와 펜을 가지고 책상에 앉아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게 방광이 한 시간 버텨주길 기도했다. 통역 경력 고작 1주일인 나는 인터뷰 중 감독이 언급한 참고사항을 놓쳤고, ‘이제 다른 통역사가 화장실 걱정을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봉준호 감독 이상으로 ‘스타’가 된 통역사 샤론 최(최성재·27)가 19일 할리우드 소식지 버라이어티에 쓴 글이다. 우려와 달리 샤론 최는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부터 지난 9일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10개월 ‘오스카 레이스’를 완주했다. 지난해 ‘버닝’으로 아카데미 국제영화상(당시 외국어영화상) 예비 후보에 오른 이창동 감독의 통역을 맡은 게 다인 ‘초보’ 통역사였지만, 뉴욕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시네필’의 자세가 어우러져 봉 감독의 가장 완벽한 ‘러닝메이트’가 된 것이다.

‘봉준호의 속마음까지 읽는 통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6개월의 기억은 새로운 도시와 마이크, 수상 소식 등이 뒤섞여있다”며 “목소리 보호를 위해 허니 레몬차를 달고 살았다”고 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의 말을 잘못 전달할까봐 불안감과 싸웠다. 무대 공포증을 극복한 유일한 방법은 무대 뒤에서 한 10초간의 명상과 ‘관객들이 보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며 나 자신을 다독인 것뿐”이라고 돌이켰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그의 화법을 익힌 것도 통역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불면증을 달래려고 봤던 영화들, 동서양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 노력, 봉 감독의 유머와 표현력 등이 힘이 됐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한 그는 이중언어 사용자로서 고민도 털어놨다. “초등학교와 대학을 LA 근교서 다녔다. 그 무렵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이상한 혼종(hybrid)이 됐다. 미국인이 되기엔 너무 한국적이고, 한국인이라기엔 너무 미국적인, 그렇다고 한국계 미국인도 아닌 존재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는 얘기다. “통역사가 직업은 아니었지만, 지난 20년간 나 자신의 통역사로 살아왔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다.” 샤론 최는 “평생 영어와 한국어를 놓고 선택하는 것에 지쳤기 때문에 영화의 시각적 ‘언어’에 반하게 됐다”고 했다.



“봉 감독과 함께 한 모든 여정이 특권이었다. 인터뷰를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 카메라, 공간, 캐릭터 등 신성한 삼위일체에 관한 마스터 클래스를 수강하는 것 같았다.” (기생충)팀원 및 배우들과 일대일 관계를 맺게 된 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그는 “이들과 다시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유진·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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