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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할퀴고 간 두 러시아 여인의 삶

빈폴(Beanpole)

[사진=Kino Lorber 제공]

[사진=Kino Lorber 제공]

2019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상을 수상했고 2020 오스카상에서는 봉준호의 '기생충'과 함께 국제장편영화 부문에서 경쟁을 벌였던 작품이다.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소설을 영화화 했다.

남자들 이상의 고통을 겪었음에도 여성들은 전쟁 이야기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에 등장하는 승리와 공훈, 파괴와 폭격은 이 영화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전후의 혼란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여성들의 감정과 생각과 체험을 통해 가슴 져며오는 그들만의 전쟁 경험기를 담아냈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칸테미르 발라고프 감독은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붕괴의 여진을 진지하게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빈폴'은 여성들에게 남아있는 전쟁의 잔상과 트라우마를 그린 영화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생존의 현장에서 투쟁을 지속해야 하는 두 여인의 서글픈 이야기,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처절한 과정이 애틋하다.

영화의 배경은 1945년 레닌그라드. 독일군과 혹독한 전쟁을 치른 끝에 승전국이 됐지만 여전히 전쟁의 상처가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다. 병원은 신체 일부가 없는 군인들로 가득 차 있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굶주림은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이야'는 키가 크고 마른 여자들에게 붙여지는 별명 '빈폴'로 불린다. 그녀는 갑자기 온몸이 굳어 버리는 뇌진탕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야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다섯 설 나이의 파슈카와 함께 살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소박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슈카가 방바닥에서 구르며 놀던 이야에게 발작 증세가 일어난다. 한순간 예기치 않던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전장에서 지원병으로 일하던 친구 마샤가 돌아온다. 두 사람의 대화에 이제까지 숨어 있던 과거의 아픈 이야기들이 들추어진다. 파슈카는 간데 없다. 마샤는 이야에게 '자기의 아들'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남자를 필요로 하는 마샤, 마샤를 필요로 하는 이야, 마샤의 남자에 대한 이야의 본능적 저항 그리고 이런 환경에 처한 두 여자의 삶에 주목한다.

전후 레닌그라드의 풍경과 분위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스크린에 재현했다. 빛과 어둠의 대조, 섬세한 질감의 색채는 사회주의 분위기 가득한 러시아 리얼리즘 그림들을 옮겨 놓은 듯 아름답다.

2017년 역시 칸영화제에서 선보인 자신의 첫번째 작품 '가까이(Closeness)'에서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빌라고프는 여성과 민족에 대한 소재를 거칠고 적나라한 리얼리즘적 기법으로 표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빈폴'은 '가까이'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핸드헬드와 롱테이크로 현실감을 높이면서 관객들을 자신의 주인공들과 동화시킨다.

현실과는 유리된, 그러나 처절하게 현실에 살아 있는 전쟁의 징후들이 두 여성의 심리를 쫓는다. 전쟁의 폭력은 지나갔지만 그 폭력의 트라우마는 잔영으로 진하게 남아있다

한줄 요약: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생존의 현장에서 투쟁을 지속해야 하는 두 여인의 서글픈 이야기가 전후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처절한 과정이 애틋하게 담겨있다. 사진 Kino Lorber 제공. 139분.

등급 NR, Landmark's Nuart Theatre


김정·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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