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집에서 볼만한 영화] 흑사병 창궐했던 중세 유럽의 시대상

제7의 봉인 (The 7th Seal)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은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 그 자체였다. 전염병은 어느 시대에서든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는 극혐 주의를 불러온다. 다 같이 극복해야 할 위기상황을 자기 이익 추구의 방편으로 삼는다.

가톨릭이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중세의 유럽 대륙은, 흑사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여겼다. 십자가를 들고 알몸이 되어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는 등의 극단적 회개 방식이 성행하면서 유럽 대륙은 무분별한 광기와 혐오로 가득 찼다.

'제7의 봉인'은 인류사에 최대의 피해를 남겼던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의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외침과 속삭임(Cries and Whispers, 1972), 산딸기(Wild Strawberries, 1957), 페르소나(Persona, 1966) 등의 철학적 영화를 만든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베르히만 감독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일곱 번째 봉인을 열자 천상의 침묵이 있었노라"는 요한계시록 8장 1절 구절을 모티브로, 중세의 설화 안에서 삶과 죽음, 신과 인간, 그리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악마를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파헤쳤다. 영화 시작부터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죽음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무분별한 광기로 돌변하면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영화의 분위기를 뒤덮는다.



십자군 전쟁 후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지역을 지나 스웨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 그의 귀환 길은 온통 죽음의 냄새, 죽음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기사는 이러한 인간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신의 존재에 깊은 회의를 품는다. 그때 사신(死神)이 그의 앞에 나타나 무시무시한 저주의 예언을 퍼붓는다. 기사는 죽음을 담보로 사신에게 체스 게임을 제안한다. 재앙을 이기기 위해 십자가를 앞세웠던 중세 유럽인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신에 대한 회의와 함께, 인간에게 구원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현실과 초현실이 뒤엉켜 있는 이 작품을 통해 베르히만 감독은 사랑, 두려움, 형벌에 관한 성경적 해석들을 사유하며 광대 가족에게서 보는 가족에 대한 사랑,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의 사랑에서 그 답을 찾는다.

인류 역사에 '흑사병'과 같은 바이러스는 늘 존재해왔다. 그러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혐오다. 재앙을 만나면 다른 곳에서 희생양을 찾는 우리의 본성 때문일까, 인간 실존의 부조리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유발된 타민족, 타인종에 대한 비이성적 혐오와 다양한 형태의 차별행위들을 이미 목격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몰고 온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최대의 병기는 친절, 배려 그리고 사랑이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위기가 한 걸음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이길, 그리고 귀한 가르침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한줄요약: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대열에 올라 있는 작품. 중세의 기사가 죽음을 담보로 사신과 체스 게임을 벌인다. 유튜브, 구글플레이, 아마존 프라임 등. 96분


김정 / 영화평론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