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볼만한 영화] 흑사병 창궐했던 중세 유럽의 시대상
제7의 봉인 (The 7th Seal)
'제7의 봉인'은 인류사에 최대의 피해를 남겼던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의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외침과 속삭임(Cries and Whispers, 1972), 산딸기(Wild Strawberries, 1957), 페르소나(Persona, 1966) 등의 철학적 영화를 만든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베르히만 감독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일곱 번째 봉인을 열자 천상의 침묵이 있었노라"는 요한계시록 8장 1절 구절을 모티브로, 중세의 설화 안에서 삶과 죽음, 신과 인간, 그리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악마를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파헤쳤다. 영화 시작부터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죽음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무분별한 광기로 돌변하면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영화의 분위기를 뒤덮는다.
십자군 전쟁 후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지역을 지나 스웨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 그의 귀환 길은 온통 죽음의 냄새, 죽음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기사는 이러한 인간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신의 존재에 깊은 회의를 품는다. 그때 사신(死神)이 그의 앞에 나타나 무시무시한 저주의 예언을 퍼붓는다. 기사는 죽음을 담보로 사신에게 체스 게임을 제안한다. 재앙을 이기기 위해 십자가를 앞세웠던 중세 유럽인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신에 대한 회의와 함께, 인간에게 구원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현실과 초현실이 뒤엉켜 있는 이 작품을 통해 베르히만 감독은 사랑, 두려움, 형벌에 관한 성경적 해석들을 사유하며 광대 가족에게서 보는 가족에 대한 사랑,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의 사랑에서 그 답을 찾는다.
바이러스가 몰고 온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최대의 병기는 친절, 배려 그리고 사랑이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위기가 한 걸음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이길, 그리고 귀한 가르침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한줄요약: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대열에 올라 있는 작품. 중세의 기사가 죽음을 담보로 사신과 체스 게임을 벌인다. 유튜브, 구글플레이, 아마존 프라임 등. 96분
김정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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