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실종으로 본 페루의 흑역사
이름 없는 노래 (Song without a Name)
얼마 후 깨어나 보니, 아기가 온데간데없다. 간호사들은 없어진 아기에 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고 내일 다시 오라고만 한다. 딸을 보여달라는 애원에도 직원들은 조지나를 매몰차게 몰아내고 문을 걸어 잠근다. 쫓겨나듯 클리닉을 나온 조지나는 다음 날 다시 그곳을찾아가지만 클리닉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가짜 클리닉’에 유린당하여 신생아를 도난당한 조지나는 신문기자 페드로 캄포스를 만나 사정을 털어놓는다. 두 사람의 필사적인 아기 찾기가 시작된다. 페루의 부패 권력의 엄청난 비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치는 썩었고 관리들은 난폭하다. 페루 사회 깊숙이 배어 있는 부패의 추악함과 시대가 품고 있는 부조리한 기운(起雲)에 사람들은 그저 무기력할 뿐, 분노조차 할 수 없다. 기자 캄포스의 고독한 고발 의식과 조지나의 모성애를 통해 우리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부패 권력의 극치를 본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벌레로 변신해 있음을 발견하는 부조리에서 시작되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연상된다. 조지나가 겪고 있는 부조리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뒤집을 수 없는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벌레의 변신뿐만 아니라 죽음에도 무감각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느덧 그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있다.
페루와 뉴욕을 오가며 주로 단편 영화들을 제작해 온 멜리나레온감독이 연출을 했다. 힘없는 존재들의 억울한 사연은 픽션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로 그려져 있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4:3의 좁은 화면비로 촬영, 편집된 흑백 화면과 인디언 원주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설정은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도 비교된다. 레온 감독은 페루 관료체계의 절망적 상황에 보다 근접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식으로 촬영을 했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조지나의 악몽을 통해 페루의 흑역사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지난주 막을 내린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출품된 작품. 20019년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버추얼 시네마 FilmMovement.com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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