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김기덕 감독 코로나에 스러지다
세계 3대 영화제 석권 ‘명장’
라트비아 현지 병원서 사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해 칸 영화제 작품상(황금종려상)을 받기 전까지 김 감독이 ‘피에타’로 2012년 베니스영화제 작품상(황금사자상)을 받은 게 한국영화계에선 가장 큰 트로피였다. 덕분에 그해 은관문화훈장까지 받았다. 앞서 2004년엔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은곰상), 같은 해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받으며 3대 영화제에 두루 이름을 올렸다.
1960년 경북 봉화 출생으로 서울로 이주한 10대 시절부터 공장에 다니는 등 정규 대학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90년대 프랑스에서 그림을 공부하다 독학으로 영화 감독을 꿈꿨다. 96년 데뷔작 '악어’로 충격파를 던진 후 거의 매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다. 대자본이 장악한 한국 영화계에서 저예산 독립 제작 체제로 작업하며 각본·연출·미술을 거의 스스로 담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쁜 남자’(2002) 등을 통해 소외되고 도태된 자들의 원초적인 삶을 자극적인 영상미학으로 선보이는 게 그의 장기였다.
하지만 특유의 폭력적인 작품세계 이면에서 영화 제작 현장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2018년 전 세계적인 ‘미투’ 파문 속에 그와 영화를 함께 했던 여배우·스태프들이 각종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고 폭력에 시달렸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그는 법정 다툼을 벌이는 한편 해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영화가 폭력적이라도 내 삶은 그렇지 않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2017)을 끝으로 한국 영화계를 떠나 해외를 떠돌았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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