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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죽비와 할

바람은 솔숲에 깔린 새벽 안개를 밀고 나와 법당 처마 끝에 이르러 풍경소리가 된다.

풍경에 걸려 뜬눈으로 밤을 밝힌 물고기(?)의 뒤척이는 소리에 아기다람쥐 덜깬 잠 비비며 합장하는데, 풀잎 끝에 아슬아슬 맺힌 영롱한 이슬 한 방울 기어이 몸 떨어뜨린다. 맥맥이 일파만파 기지개 켜는 우주. 만상이 읊조리는 무정(無情)설법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무슨 일로 먼길을 왔는고?' '큰 뜻을 얻고자 합니다.' 불법의 대의(大義), 그 말씀이신가? '내려놓으시게' '한 물건도 지닌 것이 없습니다.' 지닌 것이 없다는 한 물건을 지녔거늘, '허면 짊어지고 가시게나.'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들을 귀 있어도 듣지 못한다.

'무슨 일로 먼 걸음을 했는고?' '풀어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해탈(解脫)이라…한데, '묶은 놈은 누구인고?'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손에 쥐여줘도 쥔 줄을 모른다.

'무슨 일로 먼길을 왔는고?' '번뇌 망상의 불꽃이 치성합니다.' 알았네. '그놈들이 있는 곳을 말해 주게' 내 그놈들을 당장 요절을… '모릅니다.' 허허, '자네도 모르는 것을 난들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살면서 우주를 깨우는 한 소식을 만나도 만나지 못한다.

'무슨 일로 먼 걸음을 했는고?' '참 나를 찾고자합니다' 글쎄다, '나(아집)가 있는 곳엔 그런 물건 없으이.'

또다시 '참나'를 찾아 돌아서는 학승의 모습에 선사는 막막하다. 아, 장군죽비 한방이면 특효인 것을.

선가용어인 심인(心印)은 언어를 떠난 마음의 깨달음, 그것의 이심전심을 인감도장에 비유한 것이다.

인도에서 심인을 전하고자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대사, 공부가 깊고 쌓은 공덕이 수월찮다는 풍문이 자자한, 양나라의 무 황제(502-549)를 만난다.

'성스러운 불교 제일의 진리는 무엇인가?' '텅 비어서 성스럽다 할 것이 없소이다.' '짐이 수많은 불사를 한바, 공덕이라 하겠는가?' '공덕이랄 게 무에 있겠소이까?' '대체, 그대는 누구인가?' '모르겠소이다.' 할!

한판 진검승부를 기대했으나 성과 속, 주객이 갈라지고 공덕이 있네, 없네, 주절대며 아상과 집착 온갖 분별로, 칼을 뽑기도 전에 갈팡질팡하는 무제를 뒤로한 달마, 그 허허함을 양쯔강의 거친 강바람에 날려 보낸다.

무딘 양무제의 뒤늦은 장탄식이다.

'보아도 보지 못했고/ 만나도 만나지 못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한스럽고 한스럽다.'

선사가 제자에게 말로써 말할 수 없는 격외도리를 드러낼 때나, 기존의 인식논리,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깨부수고 직관을 강조할 때, 분별로 인한 사견, 망상을 단칼에 끊도록 할 때, 나태와 방일을 호되게 꾸짖을 때, 내려치는 법구가 죽비이다. 토해내는 벽력같은 소리가 '할'(喝 꾸짖을 '갈')이다. 할!!!

musagusa@naver.com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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