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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서 골고다까지 예수의 자취를 찾아

손국락 교수의 이스라엘 성지순례

이스라엘 성지순례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지역, 이스르엘 평원 지역, 사해 지역, 쉐펠라 지역, 그리고 예루살렘 지역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7박 8일 동안의 이스라엘 완전일주 코스를 통해 40여 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지면 관계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곳만 골라서 소개를 한다.

갈릴리 지역

갈릴리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도시다. 갈릴리 호수 선착장에서는 '예수의 보트'라는 이름의 목선들을 운항한다. 푸른 야자수가 서 있는 호숫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부활한 예수는 갈릴리로 와서 고기잡이하는 일곱 제자들과 함께 조반을 먹으며,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은 후 "내 양을 먹이라"고 했다. 그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갈릴리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예수가 산상설교를 하시던 가버나움의 조그마한 동산이다.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팔복교회'가 세워졌다. 이 팔복교회의 경사진 언덕 바로 밑에 '타브가'라는 작은 마을에는 '오병이어 기념교회'가 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이적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다. 또한, '예수의 고장'으로 알려진 가버나움은 예수의 사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곳으로, 고대에는 메소포타미아와 다마스커스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지나 이집트까지 뻗어있는 큰 무역로와 연결된 중요한 교차로에 위치한 도시였다.

이스르엘 평원 지역



이스르엘 평원은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시작해서 요단강까지 이르는 물이 많고 비옥한 벌판을 일컫는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주요 전략 요충지로서 군사적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므깃도 평원은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져 무척 평화로워 보이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제국들의 쟁탈전이 있었으며, 요한계시록에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왕들이 마지막 전쟁을 벌이는 '아마겟돈'으로 나타나있다. 그리고,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지만 나사렛에서 일생을 보냈다. 이곳에 중동지방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수태지교회'가 세워졌다. 현재의 교회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지오반니 무지오의 설계로 건축이 되었으며, 교회 첨탑은 마치 백합꽃이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모습은 세상에 내려온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해 지역

사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머드(진흙)와 최고급의 소금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다. 염도가 약 30% 이상이어서, 일반 바다의 약 10배가 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많은 피부질환자들이 사해에 와서 천연 치료를 받는다. 특히,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사해의 물로 아름다운 피부를 관리해서 사해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해의 북서쪽에 위치한 쿰란은 사해사본을 기록한 에세네파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던 지역이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세속화된 사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 거주지를 형성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들은 로마군에 의해 몰살을 당했다. 그때, 두루마리 성경들을 보존하기 위해 쿰란의 자연 동굴 속에 숨겼다고 한다. 특히, 마사다는 유대인의 선민사상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의 하나다. 1차 유대전쟁 (AD 66-73)에서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함락되자, 열혈당원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피신을 했다. 로마의 실바 장군은 967명의 마사다 저항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정규 군단병 9000명과 유대인 전쟁포로 6000명을 투입했다. 그 결과 마사다에 고립되었던 유대인들은 스스로 자유를 위한 죽음을 선택했다. 아직도 마사다로 상징되는 불굴의 저항정신은 유대인의 유전인자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쉐펠라 지역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으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살기 좋은 이 마을에서 다윗왕이 태어났으며, 다윗왕의 후손인 예수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AD 4세기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가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예수가 탄생한 마구간으로 알려진 동굴 위에 '탄생기념교회'를 세웠다. 교회 입구에 있는 작은 '겸손의 문'을 들어선 후, 동굴 입구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오른쪽에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은별이 있다. 그리고, 엘라 골짜기는 이스라엘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은 블레셋(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된다. 그리고, 엘라 골짜기는 블레셋 군과 이스라엘 군이 치열한 전쟁을 했던 장소였으며,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자 다윗이 이곳에서 골리앗과 한판 승부를 겨뤘다. 다윗은 물매로 조약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맞혀 쓰러뜨린 후 골리앗의 칼을 빼 그의 목을 베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움을 벌인 것은 막연한 용기가 아니라 믿음이었다. 즉,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았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차로 1시간 30분가량 남쪽으로 달리면, 네게브 지방의 첫 도시인 브엘세바를 만나게 된다. 성경에 의하면, 브엘세바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거주했던 곳이며, 특히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려고 브엘세바에서 3일 거리에 있는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에 가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요구한 곳이다. 히브리어로 '브에르 쉐바'의 '브에르'는 우물을 의미하며, '쉐바'는 일곱을 의미한다. 이 '일곱 우물'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판 '일곱 우물'에서 유래했다.

예루살렘 지역

역시, 성지순례의 으뜸은 예루살렘 지역이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가 습관에 따라 기도하던 곳이다. 특히, 예수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예루살렘의 묵시적 멸망을 예언하며 눈물을 흘렸던 곳이다. 그곳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루치가 눈물 모양의 '감람산 눈물교회'를 지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가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준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헬레나 황후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와서 '감람산 주기도문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구원의 은혜를 묵상하는 고통의 길이다. 이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안토니아의 요새에서 골고다 까지 걸어갔던 길이다. 십자가의 길 그 자체는 배신과 고통 그리고 저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구원을 나타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순된 십자가의 길에는 기독교의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즉,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처형된 역사적인 사실에서 기인한다. 특히,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갔던 '비아 돌로로사'의 종착점인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성묘교회'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방문하고 싶어 하는 가장 거룩한 곳이다. AD 135년경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는 이곳에 비너스의 신전을 세웠지만, 훗날 헬레나 황후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부탁하여 비너스 신전을 파괴하고 AD 335년에 성묘교회를 세웠다.

예루살렘 성전은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파괴된 후,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일부가 남아 있어서, 유대인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를 드리며 이곳을 '서쪽벽 (Western Wall)' 또는 '통곡의 벽 (Wailing Wall)'이라 부른다. 그리고, 감람산 정상은 예수가 하늘로 승천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감람산 승천교회'가 세워졌다. 원래, 이 건물은 아래가 8각형이고 여덟 방향 모두 아치형의 문이 있었으며, 예수의 승천을 상징하기 위해 지붕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1187년 아랍의 살라 알 딘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이 건물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천장을 막아 돔으로 만들었다. 승천교회 내에는 승천 당시 예수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작은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7박 8일의 성지순례를 마치며, 성 카타리나 기념교회 앞에 쓰여진 "이곳에 관광객으로 오셨다면 순례자로 나가시길 바라며, 만일 순례자로 오셨다면 거룩한 성자로 나가시길 바랍니다"라는 방문 문구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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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국락

보잉사와 라번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1998년 '시대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한국문단에 등단한 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작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 '혼돈 속에 핀 코스모스'(2002)와 칼럼집 '우주와 나의 실존'(200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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