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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다름과 틀림

=사는 지역에 따라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고, 어느 곳에서는 장남이 부모를 모시지만 어느 곳에서는 장녀가 혹은 막내가 부모를 모시기도 한다. 예절이나 의식주 문화 역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시대와 지역이 한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듯 각자의 독특한 처지와 경험 역시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생각의 차이가 때로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수준이다.

 어떤 면에서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위의 예처럼 운동경기와 미의 기준 같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영역의 경우에는 이 정도에 그치지만, 종교와 정치 같은 민감한 이슈라면 미운 마음까지도 나게 된다.

 대종사께서는, “우리 모두는 익히고 아는 바가 달라서 나의 아는 바를 저 사람이 혹 모르거나, 서로의 풍속이 다르거나, 과거와 현대의 지견이 같지 아니하거나, 또는 무엇으로든지 전생과 차생에 익힌바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질이 다르고 보면, 나의 아는 바로써 저 사람의 아는 바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며, 심하면 미운 마음까지 내게 되나니, 이는 그 특성을 너른 견지에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대들도 먼저 사람마다 특성이 있음을 잘 이해하여야만 이웃, 사회, 국가 사이에 서로 질시와 반목 없이 두루 화합하게 될 것이다” 하셨다. 다름과 틀림의 혼용을 경계하신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틀림이 다름으로 둔갑되는 경우 말이다. ‘1+1=3’이 맞는다고 주장하는 학생에게도, “생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어. 이해해 줄게.” 이렇게 말 할 수 있을까? 딱히 틀렸다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특정한 정치사상이 국가나 국민에게 더 이로울 수 있고, 회사를 운용하는 여러 방안 중 보다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안도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1+1=2’이 궁극적 진리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2019년 미국이나 한국의 초등하교 교실에서는 ‘참’이라 할 수 있고, 노예제도 역시 2019년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틀림’이라 할 수 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문제라면 선과 옳음은 장려하고, 악과 그름은 피하는 것이 본인은 물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수다.

 사형제도, 낙태, 동성애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음식에 대한 동물보호론자들의 문제제기나, 국가 운영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단순한 다름의 문제인지 아니면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는 문제인지, 시비를 가려야 한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인간과 우주의 근원을 완벽히 이해하신 하나님이나 부처님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적 수준에서 어느 정도는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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