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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회광반조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LA중앙일보] 발행 2019/12/10 종교 26면 기사입력 2019/12/09 18:26

북미 원주민들 중 크리크족은 12월을 ‘침묵하는 달’ 퐁카족은 ‘무소유의 달’이라고 불렀다.

할 일을 다 해 마친 뭇 생명들이, 몸과 마음을 갈무리해 엄동을 건너기 위한 겨울나기 채비를, 아름답게 표현한 시적 은유이다. 해 뜨니 낮이요 달 뜨니 밤인 것은 너나없이 같은데, 심신이 무뎌 갈수록 세월은 더 빨리 흐르는 듯하다. ‘시간 수축효과’(프랑스. 폴 자네)라고 한다. 나이 들어가면 젊은 날에 비해 감흥을 느낄 새롭고 강렬한 경험은 줄고, 흥분할 일이 줄어 체감시간이 빨라지는 현상이라 했다.

그와는 달리,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편안하여 즐거우면 하루는 짧고, 몸이 불편하고 근심, 걱정이 많아 마음이 복잡하면 하루가 구만리다.

법구경에서도 “지친 자에게 길은 멀고, 잠 못 이루는 자에겐 밤이 길다”고 했다.

이러나저러나 세월이 빠르고 느리거나, 길고 짧다는 느낌은 모두 마음에 달린 일이라 하겠다.

어쩔거나. “어느 쪽으로 달아나도 지옥이다. 내 마음이 지옥이니”(밀턴의 실낙원에서)

회광반조(回光返照)는 선가의 선법 중 하나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외부로 향한 빛을 돌이켜 자신의 내심을 관조하게 되면 본래면목을 찾게 될 터, 따로 구할 바 없으니, 남의 소만 세고 앉은 목동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한 생각 일어나면 바로 알아차려라. 알아차리면 바로 놓게 된다.”고 했다.(좌선의)

일어난 느낌이나 지각 따위의 모든 심리현상은 인연조건에 의해 잠시 가립(연기)된 것이다. 그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지고 만다.(무상)

이를 알아차리면 헛된 욕망과 집착을 여의게 되어 평정심을 찾게 되고, ‘그지없는 한가로움’에 이르게 된다는 행법이다. 회광반조는 매순간, 어디서나 오롯이 깨어 있어, 일어나는 생각 생각에 매이거나 휘둘리지 않으면, 서 있는 자리마다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임을 가르친다. 어느 쪽으로 가도 극락이다. 내 마음이 극락이니.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임제 선사)

이 해도 속절없이 저무는 즈음이다. 그동안 쉼 없이 부대낀 몸과 마음이다.

부처될 회광반조면 어떻고, 그냥 삼매명상이면 어떠며 단순 성찰인 ‘돌이마음’이면 어떤가. 잠시 비켜 앉아, 어지럽고 불편한 잡티들을 털어내는 무소유로 자기정화의 여백을 가져, 산뜻한 마무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하여 하마하마 환한 새해를 기대해 볼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문병란 ‘희망가’ 중에서)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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