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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줌 6인방

"악보에 '도'도 모르겠고
봐도 금세 잊어버린다
입술도 마르고 목에 걸린
색소폰이 무겁게 느껴온다.
힘주어 악기를 잡다보니
손가락 통증까지 생긴다"

나는 색소폰 동우회 회원이다. 동우회 6인방은 평균 나이 73세로 은퇴를 했고 손주들조차도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뒷방 노인들이다. 모임이 시작했을 때 악보를 처음 대하는 대원도 있었다. 배우겠다는 열정으로 색소폰 교재로 기초부터 시작했다. 나이도 잊고 한 시간 반쯤 열심히 배웠다. 악보에 ‘도’가 어디에 있고 ‘도’의 손가락은 어딘지… 또 금세 잊어버린다. 입술도 마르고 목에 걸고 있는 색소폰이 무겁게 느껴온다. 너무 꼭 힘주어 붙잡고 있었던 왼쪽 엄지손가락에 통증이 온다. 인대가 늘어났나 보다. ‘No Pain, No Gain(아픔 없인 얻는 게 없다)’이란 말이 생각난다.

동우회는 줌을 통하여 모인다. 사실 줌이 무엇인지, 웨비나(webinar), 텔레헬스(Telehealth)가 무엇인 줄 몰랐다. 그러나 영리한 한국 노인들은 잘도 따라 한다. 요즘 카톡에 유행하는 노인들이 해야 할 것 몇 개중 하나가 젊은이들 하는 것 다 배우기다. 그래야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말은 하지 말고 지갑만 열기다. 지금 우리 세대들은 부모님께 효자가 되어야 했고 자식들한테는 멋진 부모가 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소위 말하는 샌드위치 세대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단다. 그런 의도에서 색소폰 동우회도 생겨난 것 같다.

동우회 6인방은 각자 다른 삶을 산다. 라미라다에 사시는 L선생님은 S공대를 졸업한 80세 노장으로 음만 듣고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절대음감을 가졌다. 우리의 롤모델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부에나파크에 사는 K 장로님은 S약대를 졸업하고 1년 전에 은퇴하면서 우리 동우회에 참가했다. 색소폰 소리가 멋진데 언제나 부족하다며 겸손하다. 세리토스에 사는 L권사님은 총무 일을 맡았다. 엄마같이, 언니같이 궂은 일을 도맡아 악보 복사에서부터 생일까지도 챙겨 든든하다. 크리스마스 전날엔 본인 집에서 색소폰 회원끼리 모여 작은 연주회도 가졌다.

플라센티아에 사는 우리 선생님은 인내심이 많다. 한 번도 싫은 얼굴을 하는 모습을 못 봤다.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언제나 웃는다. 다섯 번째 제일 젊은 분은 아직 현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게을리 할 수 없다면서 본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나다. 음악하고 거리가 먼 내가 감히 색소폰을 시작한 것부터 뭔가 잘못한 것 같았는데 처음 6개월은 소리만 내도 신기했다. 어느새 아는 찬송가를 연주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그런데 갈수록 힘들다. 텅잉에 비브라토에 밴딩에 무슨 소린인지, 가르쳐 주는데도 못 따라하겠다. 한계를 느끼면서 요즘 슬럼프에 빠져있다. 노력하면 되겠지 하며 부딪쳐 보는 수밖에.

뒤돌아서서 포기하긴 투자한 것이 너무 많다. 치매 예방 차원에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적어도 손가락으로 운지를 많이 하다보면 손 운동에서부터 머리를 쓰는 것까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위로해본다.

3월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기기 전엔 교회에서 모여 연습했는데 지금 그때가 그립다. 요즘은 팬데믹(Pandemic)이란 새로운 단어가 나왔다. 노멀(Normal)이 뉴 노멀(New Normal)로 바뀐 세상이다. 거기에 발맞추어 우리 동우회는 줌을 통하여 모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2번씩 줌으로 얼굴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수업하는 날이다. 유행하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노래 ‘보랏빛 엽서’가 색소폰으로 흘러나온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은 각자 불어보라고 하신다. 우리 6명의 학생은 소리 내어 힘껏 색소폰을 불어본다. 줌 화면상이라 자세도 소리도 마음에 안 들어 불편한 점이 많다.

“보랏빛 엽서에, 실려 온 향기는 당신에 눈물인가, 이별에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당신에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치매 안 걸린다기에 배우는 것이니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구동성이다. 서로에게 위로하는 말이다. 우리 6인방은 어려운 코로나바이러스 시대를 색소폰을 배우며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루한 팬데믹이 끝나면 곧 명불허전으로 우리 동우회가 널리 알려져 이곳저곳에서 불러주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다리며 ‘보랏빛엽서’를 다시 한 번 불어본다.


김규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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