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Los Angeles

66.0°

2020.10.24(Sat)

[수필] 추석 성묘

윤덕환 / 수필가
윤덕환 / 수필가
  • 글꼴 확대하기
  • 글꼴 축소하기

[LA중앙일보] 발행 2020/09/25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20/09/24 17:50

뒤뜰에 대추가 줄줄이 열린 것을 보니 추석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장석주 시인이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질 리가 없다하는데 오래전 고향의 추석 성묘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추석 때가 되면 성묘하러 선산이 있던 수색에 갔다. 지금은 수색이 상점들과 사람들로 넘치는 번화가이지만 60년 전에는 완전 시골이었다. 서울 태생인 내게는 수색의 풍경이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조상님들의 묘지에 성묘를 갈 때는 남자들만 갔다. 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사촌형과 내가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가을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 쪼았다. 누렇게 변한 잔디 위에 메뚜기와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야산 기슭에 나열된 조상 산소 묘 앞에 모든 분께 절을 해야 했다. 매번 아버지가 이 분이 몇 대 조상인지 설명을 해주었지만 기억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긴 성묘 인사 절차는 마침내 끝났다.

기다리던 놀이 시간이 되었다. 나는 비탈진 잔디에 누어서 산 아래로 굴렀다. 마른 잔디 냄새를 맡으며 경사진 잔디 위를 굴러가면 하늘은 돌고 마치 회전목마를 탄 기분이다. 다시 올라가 몇 차례 굴러 내리기를 하다보면 시장기를 느낀다. 마침 멀리서 산소를 관리해주시는 분이 점심식사가 다 되었다고 얼른 내려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산지기 아저씨네 펌프 물에 손을 씻고 마루에 올랐다. 접는 상이 몇 개 이어져있고 상위로 음식들이 푸짐하다. 밥 냄새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에는 시골 인심같이 밥이 수북이 담겨져 있다. 열무김치와 오이며 상추가 있고, 파란 고추 옆에는 된장과 고추장도 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란찜이 뚝배기에 담겨져 있다.

성묘 후에 먹는 점심식사는 시골 풍취 속에 먹어서인지 정말 맛있었다. 식사 후에 초승달 모양으로 썰어온 수박이 들어왔다. 그리고 검푸른 색의 포도는 안양 포도인지 단맛에 입안에서 녹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가 끊기면 곤란해서 서둘러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버스가 비포장도로에 먼지를 휘날리며 지나가 모두들 혼비백산했다. 주변에는 매일 그런 먼지를 함박 뒤집어쓰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찌그러진 밀짚모자 쓰고 기우뚱하게 서 있는 허수아비가 손을 흔드는 것 같다. 기다리던 시외버스를 타고 떠날 때 산지기 아저씨는 잘 가라고 머리 숙여 연신 인사를 한다.

고향 성묘 추억에 빠져있던 내게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다람쥐가 와서 우리 집 대추 열매를 몰래 먹고 있으니 얼른 쫓아내라고 성화다. 동네 다람쥐가 울타리 위를 타고 와서는 가끔씩 먹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울타리 위를 보니 다람쥐가 두 손에 대추를 들고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측은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많이 열린 대추를 그냥 먹고 가도록 아내에게 자비를 구했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박유진 변호사

박유진 변호사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