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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을을 보내며

“과일나무가 있기에
팬데믹으로 못 나가도
봄의 환희와
여름의 실록을 느끼며
가을의 풍성함을 맛본다”

우리 집 앞 네평 남짓한 마당에는 부드러운 자태를 가진 감나무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대추나무가 있다. 그 두 그루의 과일나무는 1년 내내 나에게 다정한 친구이다. 이사온 지 15년이 되었으니 15년 지기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래층에 내려와 맨 먼저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거실 창 밖의 두 나무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다. 어느새 잔은 비워지고 나는 나무들과 대화하고 있다. 날마다 그들의 다른 모습은 나에게 환희와 감탄과 설렘으로 다가왔다.

어머 새싹이 나왔네! 꽃이 피었네! 결국엔 그 아름답고 신기함에 반해 휴대폰 카메라를 누르며 아름다움을 수없이 담아 놓는다.

파란 대추가 주렁 주렁 열려 있으면 그 기쁨을 누를 길이 없어 화폭에도 담아 본다. 그렇지만 화폭의 그림이 어찌 실물과 같을쏘냐. 안타까움에 며칠 마음 졸이다 보면 울긋 불긋 대추가 익어가고 감도 뒤따라 익어간다.



대추는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 올해는 팬데믹으로 울타리 밖으로 떨어진 것들을 줍기도 조심스러워 풋 대추일 때 수확을 했다. 풋대추는 시지도 않고 달콤하며 상큼하다. 아삭함은 어떤 과일과도 비길 수 없다.

올해는 많이 열려서 큰 광주리로 세 바구니나 땄다. 딸 친구 몇 집과 나누어 먹고 설탕에 버무려 김치통으로 세 통이나 효소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추석에는 팬데믹 기간에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신 바깥 사돈의 차례상에도 단감과 함께 한 접시씩 보기 좋게 올렸다. 그리고 잘 익은 것만 골라 따까운 햇볕에 말려 두었다. 그것은 1년 내내 밥 지을 때 한 두알 넣기도 하고 삼계탕에도 넣고 설에 약식할 때에도 고명으로 넣고 대추차도 끓여 먹는다.

대추를 수확하고 나면 옆에 있는 단감 나무가 노란 감을 내 놓는다. 단감은 대추보다 훨씬 늦게 익는데 해거리를 해서 올해는 별로 안 열린 줄 알았는데 노랗게 익으니 여기 저기서 쏙쏙 많이도 드러났다.

단감이 노릇 노릇해지면 남편은 감 수확을 하자고 조른다. 새들이 와서 쪼아먹는다고 안타까워한다. 나는 나무에 달려 있는 노란 단감이 더 익어 주황색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며 남편을 말린다.

어느 해에는 나도 모르게 감을 모조리 따 버렸다. 나는 까치밥을 남겨 놓지 않은 나무를 보고 울 것 같았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몇십 그루였다. 가을이면 그 많은 떫은 감을 따서 겨우내내 우리가 홍시로 만들어 먹을 감을 남겨두고 어머니는 큰 항아리 몇 개에 감을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떫음을 우려내어 장사꾼에게 도매로 팔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많은 나무마다 까치밥을 남겨두라고 일꾼들에게 꼭 일렀다. 늦가을 하굣길에 산등성이를 넘으면 우리 집 감나무 꼭대기에 빨갛게 익은 까치밥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몇년 동안 남편에게 까치밥을 남기기를 설득했기에 올해에는 자연스레 예닐곱 개가 나무에 달려있다. 오늘 아침에도 부리가 긴 새 한 마리가 와서 감을 쪼아 먹고 있었다. 새들은 태도가 나쁘지 않다. 하나를 다 먹고 나서 다른 것을 먹는다.

올해도 단감을 몇 바구니나 수확해서 여러 집과 나누어 먹었다. 이렇게 조그마한 마당에 있는 두 나무는 1년 내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대하고 마침내 큰 결실을 맺어 선물해준다.

이런 과일나무가 있기에 나는 팬데믹으로 밖을 나가지 못해도 봄의 환희와 여름의 실록을 느끼며 가을의 풍성함을 맛보고 있다. 이제 대추나무의 낙엽이 다 떨어졌다. 그리고 울긋 불긋한 감나무 잎들 또한 내 마음을 찬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 찬람함이 지나면 앙상한 가지는 겨울 나기를 하겠지. 낙엽으로 덮인 땅은 비를 맞고 물을 만나 거름이 되어 내년 봄에 싹을 내려고 무진 애를 쓸 것이다.

이렇게 나의 작은 마당에는 고맙고 소중한 두 그루의 나무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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