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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불교 기독교…"그래도 동업성공"

'트루에어' M&A 신화 이용기·이응목 회장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37년간 신뢰·배려로 함께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성공하기 힘들다는 동업으로 그것도 제조업에서 세계 1등 기업을 키워 낸 ‘트루에어’의 이용기(왼쪽)회장과 이응목 회장 모습. [이응목 회장 제공]

성공하기 힘들다는 동업으로 그것도 제조업에서 세계 1등 기업을 키워 낸 ‘트루에어’의 이용기(왼쪽)회장과 이응목 회장 모습. [이응목 회장 제공]

“37년 우정으로 세계 1등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한인 기업 ‘트루에어’(TRUaire·공동 회장 이용기·이응목)의 3억6000만 달러 매각 소식<3일자 중앙경제 1면>에 한인 커뮤니티로부터 축하 인사가 쇄도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인들은 이번 결과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서로에 대한 강한 믿음과 배려, 워커홀릭 수준의 성실함을 이미 알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37년여 간 잡음 없이 성공적으로 동업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용기 회장(74)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기독교 신자다. 그는 1971년에 도미해서 냉난방기(HAVC) 관련 사업을 했으며 성격은 느긋하고 신중하다는 평이다. 1973년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응목(71) 회장의 고향은 경남 거창이며 종교는 불교. 그는 건설업과 봉제업 등을 했고 성격은 급하고 의사결정은 빠르다.

두 사람은 1983년 봉사단체 ‘LA올림픽 라이온스 클럽’에서 만나 본격적으로 친분을 쌓았다. 환풍기 부품 제조업 시장 가능성을 엿본 HVAC 관련업을 하던 이용기 회장의 동업 제안을 봉제업으로 성공한 이응목 회장이 수락하면서 1984년 트루에어가 설립됐다. 1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흑자를 내지 못했다. 뚝심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로 10년 후부터 손익분기점(BEP)에 도달했다. 이후 홈디포와 같은 주류시장을 뚫으면서 업체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매년 평균 15%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업계 1위 자리에 올라섰다.



"1% 더 일하고 1% 덜 가져갔다"

연 매출은 1억 달러가 넘는다. 코로나19가 휘몰아친 올해도 13%의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트루에어’의 이런 성공 비결은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고 가장 잘하는 일을 나눈 분업(동업)이었다. 이용기 회장은 “제조업에 오랜 경험이 있는 이응목 회장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며 “(그가) 제품 생산과 기업 운영을 책임졌고 (내가) 제품 판매를 맡았던 게 동업을 오랫동안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응목 회장도 “서로가 일은 상대방보다 1% 더하고 수익은 1% 덜 가져가면 부딪칠 일이 없다”며 “이용기 회장의 탁월한 사업 안목에 숟가락을 얹어서 좋은 결과를 맞게 된 것”이라며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영어의 한계와 미국식 비즈니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 1세들이 소위 ‘굴뚝 산업’이라는 제조업으로 업계 1위까지 올랐습니다. 이를 알리고 싶다기보다는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기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 한 번 더 힘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인터뷰를 마다하던 그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전한 말이다.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는 등 노화로 인해 최선의 사업 결정을 내리지 못해 은퇴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매각 오퍼를 받았고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보다는 전문 업체가 운영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 사업을 매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진성철 기자 jin.sungch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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