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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사랑의 묘약

이영자 / 수필가
이영자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2/17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8/02/16 21:37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배워야 될 것이 많아져가는 모순된 삶을 살고 있다. 미국와서 직장 생활 초년생일 때, 어느 날 직속상사가 하는 말이 "You have to learn how to say no"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노' 라는 말의 사용법을 몰라서 언제나 순종만 하는 부하 직원이 꽤나 안쓰러웠던가보다. 그래도 나는 '못 합니다'란 말을 할 줄을 몰랐다. 그런 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고 천성으로 타고나야 한다고 믿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살아갈 앞날이 예측할 수 없는 나이가 되자 얼굴에 검버섯 피듯 내면의 결점들이 점점 더 확대되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배워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레토릭(rhetoric)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듣기 좋은 듯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화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면 삶이 더 풍성했을지도 모른다. 때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대방에게 왜곡되어 전해지는 경우로 인해 불편한 상황들을 겪기도 한다. 능수능란한 듣기 좋은 말솜씨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대화법을 배우고 싶다.

배우고 싶은 것이 또 있다. 사랑하는 법이다. 지난날의 나는 자식들에게 구시대의 전형적인 엄친과도 같이 굴었다. 어릴 적엔 자라며 부모님께 맞아 본 적도 없는데 엄한 교육이 아이를 바르게 양육한다고 믿었다. 아침을 먹기 싫어하는 어린 아들이 먹지 않고도 먹었다고 했을 때는 거짓말 한다는 이유로 매를 들며 정직을 가르치려했다. 그리고는 매 맞는 아들이 애처로워 같이 울었다.

사내아이 치곤 얌전한 편이었던 아들과는 달리 천방지축이었던 다섯 살 난 딸은 말썽을 자주 피워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 왜 때려?"하며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의아해했다. 그 딸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어느 인쇄물에 적힌 글귀를 보라고 주었다. "디쥬 허깅 유어 차일드 투데이?"하면서 하루에 열 두 번씩 아이들을 껴안아 주라는 문구였다. 가슴이 짠하게 저려오며 미안한 마음에 얼굴마저 붉어졌다. 샘이 많았던 딸아이는 언제나 엄마가 오빠를 편애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변명했지만 딸아이는 생각이 아니고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열풍이 부는데 춥다고 느낄 사람은 없다. 느낌이란 생각 이전에 오는 것이다.

나는 남자의 속성에도 너무 무지했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도 칭찬에 매우 인색했다. 남편은 아주 성실한 사람이다. 이민 초년에 주위 사람들이 "미스터 P는 시베리아 허허벌판에 갖다 놓아도 살아 돌아올 사람이다"라고 할 만큼 생활력도 매우 강한 사람이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와서 틈틈이 장식용 아트 벽걸이도 만들고, 돌 지난 아들 흔들의자도 만들어주곤 했다. 그래도 나는 한 번도 잘했다거나 멋있다는 말을 할 줄을 몰랐다. 부모의 칭찬 한마디에 자녀의 자신감이, 아내의 칭찬 한 마디에 남편의 삶의 의욕이 얼마나 살아나는지, 그 묘약을 모르고 결혼생활 몇 십년을 보냈다. 세월이 오래 지난 어느 날 보니 이 세상에 아내바보 같던 남편은 별 뜻 없이 무심코 하는 나의 말 한 마디에도 방패와 창을 갖춘 투사처럼 반응하는 남편이 되어있었다.

아들 내외는 무한한 사랑과 절도(節度)를 적절히 배합하며 신세대답게 자녀를 양육하며 열심히 삶을 채우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희생이라는 비료를 먹고 자란 열매로 나타난다. 열매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단점과 착각은 왜 앞에서는 보이지 않고 뒤돌아보아야만 보이는지.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사랑하는 법을 올바로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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