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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이 세상 최고의 보물

뉴욕서 제일 멋진 한국남자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상원이가 저녁초대를 했다. 뉴욕 최고 식당가에서 최고 소믈리에의 한 명으로 꼽히는 상원이가 일하는 식당은 고급 레스토랑이라 나 같은 소시민은 평소엔 가볼 꿈도 꾸지 못하는 곳이다. 더군다나 일요일엔 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나를 위해 특별히 나왔으니 감동이 배가됐다. 상원이는 작정한 듯, 식당의 최고 메뉴들만 뽑아 한 코스씩 맛보게 해줬다. 매일 새벽 일본에서 잡은 생선을 공수해와 손질해서 저녁식사에 낸다는 생선들은 살아있는 듯 싱싱하면서도 잘 숙성된 손질로 생선 본연의 맛을 가장 맛나게 보여주면서 입 안에서 그냥 녹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니만 해도 산타바바라, 러시아, 홋카이도 산의 세 종류가 올라왔으니 말해 무엇하랴.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상원이를 좋아하는 이유다. 상원이는 큰 키에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청년답게 체구가 당당하고, 스타일리쉬한 옷맵시가 여간 댄디하지 않다. 웃을 때마다 초승달처럼 작아지는 귀여운 눈웃음은 보너스다. 주얼리 디자이너인 똑같이 착해빠진 그의 아내 마리와 이스트 빌리지의 소박한 아파트에 살면서 뉴욕에서 공연하는 음악회엔 거의 빠지지 않고 다닐 만큼 음악을 좋아한다. 딸들과도 그런 공통분모로 하여 더 좋은 친구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둘이 세계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행을 하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영화 같은 인생을 쌓아가고 있다. 친아들도 아닌데 초대해서 지극정성으로 대접해주는 그의 인성은 감동이었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충걸씨 또한 내가 좋아하는 소중한 친구다. 그는 1999년,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란 책을 출판했을 때 원고 청탁을 하면서 알게 된 유명 편집인이다. 마침 딸들의 서울 연주가 겹쳐서 청탁 받은 원고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꼭 써야 한다고 해서 호텔방에서 호텔 손님용 편지지에 급히 썼다. 편지지는 여기 저기 고친 자국, 또 보태는 부분해서 난장판이었고, 자리가 부족한 부분은 뒷장에다 번호까지 붙여서 덧붙이고 하는 바람에 도저히 누구에게 보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걸씨는 그걸 가져갔는데, 세상에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잡지에 다 실었다. 그런 기자는 처음이라 얼마나 그가 돋보였는지 모른다. 그는 '페이퍼'라는 잡지에도 관여하고 있었는데, 그의 글은 매우 독특했다. 감성은 이 세상 감성을 혼자 독식한 듯 넘치게 충만하면서, 그가 사용하는 어휘는 다른 이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의 글을 통해 나는 영감을 얻었고, 그의 감성을 따라가려 무지 애썼다. 그가 추천해주는 책들도 다른 이들과 달라서 얼마나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는지 모른다.

서울에 가면 그는 늘 젊은 후배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멋진 저녁을 보내도록 마련해주곤 한다. 그와 보내는 그 몇 시간이 내게는 새로운 문화의 충격이고, 시대의 과녁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그에게 주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갈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선생님'이라며 시간을 만드는 충걸씨는 내겐 너무 귀한 친구다. 그 충걸씨가 지금 아프다. 하루속히 회복하기를 손 모아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상원이나 충걸씨나 착해서 남에게 퍼주기만 하는 사람들이지만, 자기들 일에도 성실과 노력으로 자기의 자리에서 빛나는 존재가 됐다. 그들의 존재는 끊임없이 나를 자각시키고, 내 삶의 등대가 되어준다.

이 세상엔 수많은 보물들이 있다. 하지만 어찌 사람에 비할까. 이 세상 최고의 보물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다. 주변에 이들처럼 보물 같은 친구가 있는 건 참으로 큰 축복이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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