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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영현 환경운동가 "핵문제 해결, 내 인생이 존재하는 의미입니다"

북핵 대부 이승기 영변원자로 소장 조카
가정사에 얽힌 앙금 가슴에 담고 살아
핵무기 폐기 불가역적 성공으로 이끌어야

뉴저지주 포트리에 거주하면서 페어론에서 클립가든 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백영현 사장은 환경운동가로 불린다. 사비를 들여 '1492 그린클럽'을 창립해 지난 30년 동안 북부 뉴저지 버겐카운티를 중심으로 학교와 병원 등에 미스김 라일락과 한국산 소나무 등 3000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한인들이 많이 찾는 오버펙공원 중앙 무대 옆에도 그가 심은 250그루의 나무가 조성돼 있다. 그의 꿈은 오버펙을 뉴저지의 센트럴파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백 사장은 화원을 운영하고 한인들이 많이 찾는 시설 주변에 나무를 심는 일과 함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고, 동포들은 물론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주변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인사다. 이는 그의 외삼촌이 북한 핵개발의 대부이자 영변원자력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낸 서울공대 학장 출신의 과학자 이승기 박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 서늘한 어느 날 백 사장을 만나 그의 가슴에 수십 년간 쌓인 가정사와 북한핵과 관련된 이야기의 일단을 들어봤다.



-어린 시절 출생과 성장, 외삼촌인 이승기 박사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것인가.

"나는 1943년 서울시 종로구 계동 41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건국 후에 '국민보건체조'를 만든 백용기 교수로 연세대에 재직하고 있었다. 부친은 일본체육대를 나와 역도 올림픽 심판과 체조협회 부회장 등을 했던 체육인이다. 우린 4남 4녀였는데 내가 셋째고 제일 위 첫째 형은 서울법대 학장과 대학원장, 독도문제와 국제법 대부로 알려진 백충현 교수, 둘째 형이 이화여대 음대 학장을 지낸 백의현 교수, 아래 동생이 중앙대 의대 교수를 지낸 백무현 교수다. 모친의 오빠였던 이승기 박사는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가서 교토제대를 졸업한 뒤, 그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해방 후 한국으로 와서 서울공대 학장으로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사촌형제인 이종과, 이종탁과 함께 동숭동에 있는 외삼촌 이승기 박사의 서울공대 캠퍼스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승기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납북인지 월북인지 확실치 않지만 북한으로 갔고, 이후 모스크바대 교수를 거쳐 영변원자로연구소 초대 소장을 하면서 북한 핵개발의 가장 핵심적인 과학자로 역할을 했다. 이승기 박사는 합성섬유(나일론의 일종)를 발명했을 뿐 아니라 동구권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레닌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였다. 이승기 박사가 타계했을 때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국장을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승기 박사와 관련해 기억이나 들은 이야기가 있는지.

"집안 식구들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정말 지독하게 공부한 것 같다. 잠을 쫓을려고 추운 겨울날 서울역 앞 훤한 가로등 밑에 작은 책상을 갖다놓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공부하는 것이 독립운동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말도 들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우리는 피난을 갔다. 그러나 이승기 박사는 서울에 남아 있었고, 이후에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인민군이 북한으로 후퇴하면서 많은 지식인과 과학자를 납치해 갔는데 나중에 이승기 박사도 함께 북한으로 가서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승기 박사와 연락이 된 것은 언제인가.

"나는 대학 졸업 후에 한국과 동남아시아, 중동 등에서 석유화학 분야 컨설팅 엔지니어로 일했다. 한국이나 유럽의 큰 석유회사들과 함께 일하기도 하고 독립적인 사업을 하면서 흥하고 망하다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승기 박사와 미국에 계시던 모친이 만난 것은 1990년 초다. 당시에 미국과 북한 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나의 모친이자 이승기 박사의 여동생인 이계남 여사가 북한을 방문했다. 이승기 박사는 1남7녀 형제자매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승기 박사가 어느 정도 인물인지는 몰랐는데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 이승기 박사가 북한 핵개발을 이끄는 대부라고 말해줘서 알게됐다. 이승기 박사는 여동생인 나의 모친을 만난 뒤 몇 년 있다가 1996년 타계했다. 나는 그 무렵 스웨덴 회사와 광산기기 개발로 중국에 장기체류 중이었다.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 이승기 박사가 타계했을 때 노동신문을 갖고와서 1면에 크게 난 기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승기 박사를 통해 볼 때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의 특별한 가정사를 통해 느낀 확실한 정황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핵을 개발한 것은 그들이 '핵무기 종합개발만이 유일한 통일의 힘이고 그들 생존권의 기둥이다'라는 명료한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승기 박사가 김일성에 동조한 것은 핵무기가 유일한 한민족의 통일의 기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통일운동을 하듯이 핵개발을 했다. 이것이 또한 북한 통치자 3대의 공통된 철학이자 목표였다고 본다."

-북한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비즈니스계에서 혐오적 표현으로 '몽키 비즈니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몇 개 줄테니 너도 몇 개 주라'는 것이다. 핵폐기에 대한 것도 그렇다. 과연 북핵만 폐기해야 되는가. 인류가 가진 핵을 모두 폐기하는 성스러운 작업이 지금은 몽키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인류가 갖고 있는 핵무기 2만 개는 단 한 개도 폐기한 게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두 명한테 줬다. 이들 세 명이 진지하게 성공의 끝장까지 가야한다. 그들이 그런 절실함이 없다면 미래의 끝없는 역사 속에 인류는 머리에 핵무기를 얹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 "

-남북한과 미국, 주변국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트럼프가 김정은과 협상을 결심했다면 50억 달러 정도, 또 북한핵 개발의 원흉인 중국은 100억 달러를 부담하고, 러시아는 구 소련 때 북한에게 빌려준 한화 20조원을 탕감해 주고 좋은 세상이 되면 시베리아 철도부설권을 한반도 남북에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은 핵폭탄에 치명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는 대가로 100억 달러, 핵 보유국들은 보유 수량에 따라 자발적으로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은 최신형 원자력발전소를 북한에 장기 저리로 지어줘서 북한이 새로운 국가로 탄생할 수 있는 에너지의 근원을 마련해 줘야 한다. 링 위에서 김정은과 트럼프 둘이서 두 손을 함께 들 수 있는 결판을 내고 문재인 심판관은 두 선수의 양 손을 들어 공동우승을 선언하고 인류와 함께 축하하며 된다. 이것이 내가 제시하는 북핵 해결책이다. "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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