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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뿌리도 흔들리며 운다

뿌리 깊은 나무도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운다. 한 겨울 모진 삭풍에 잘려나간 가지들 생각에 밤새 흐느끼는 나무들을 보라. 모두가 사라진 겨울 숲속, 어둠이 절망으로 둥치를 칭칭 동여매는 밤. 목숨줄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뒷마당에 굳건히 서 있던 덩치 큰 나무가 오하이오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30년 전 새 집 짓고 내 키 반만한 나무 한 그루 심었다. 아름드리 자라 정원을 가득 채우던 나뭇잎에 몇년 째 물기가 사라지는가 했는데 속이 하얗게 비어 죽어가는 줄은 몰랐다. 조경사가 나무 둥치가 죽은 나무는 뿌리를 살릴 수 없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나무를 잘라내고 그루터기 분쇄기로 갈아 엎는다. 별을 머리에 이고 둥치를 받쳐주던 그 든든했던 뿌리가 뼛가루 되어 흩날린다. 죽음은 저리도 가볍게 흩어지는가. 영원히 땅에 뿌리 박고 사는 것은 없다.

'이것은 '뿌리' 그림이다. 모래 섞인 바닥 위로 나무뿌리가 드러나 보이는 광경 이다. 인물화를 그리면서 몰입했던 감정을 풍경에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힘없고 연약한 여인의 초상화처럼,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대지에 붙어있지만 폭풍으로 반쯤 뽑혀나온, 시커멓고 울퉁불퉁하고 옹이투성이인 뿌리를 통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이론적으로 자연을 설명하기 보다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충실하게 표현함으로써 연약한 여인의 모습에서 뿌리의 위대한 몸부림이 절실히 드러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1882년 빈센트 반 고흐가 '모래바닥 위의 나무뿌리'를 스케치 한 뒤 동생 테호에게 보낸 편지다. 고흐의 '슬픔'(석판화.1882.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은 웅크린 채 얼굴을 파묻고 비탄에 잠겨 있는 나부(裸婦)의 모습이다. 슬픔의 모델은 창녀 시엔(Sien)이다. 용모조차 별 볼일 없고 매춘부인 데다가 딸이 하나 있었고 고흐와 만났을 때는 임신 중이었지만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고흐는 시엔을 사랑했다.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 '나무뿌리'(1890.캔버스에 유채.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는 옹이투성이의 삶을 산 시엔에게 바치는 세레나데가 아닌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이 세상으로부터 외면 당해도, 포기 하지않는 예술가의 결연함이 모래바닥에 뒹구는 나무 뿌리에 잘 드러나있다.

그림은 화가의 삶이며 영혼의 목소리다. 삶의 뿌리고 생을 지탱하는 힘이다. 고흐는 독서광이었다. 신학서적과 문학작품을 탐독했는데 그의 평생 친구이자 동반자며 후원자인 남동생 테오에게 보낸 700여 통에 달하는 편지에는 10년 이란 짧은 화가의 삶을 살면서 창작에 목숨 건 예술가의 슬픔과 좌절, 불타는 의지가 잘 표현돼 있다. 고흐의 미완성 유작 '나무뿌리'가 남긴 메시지는 죽음이 아닌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이다.



뇌넨을 떠나기 전 고흐는 아인트호벤의 케세르마케르스라에게 가을 풍경화를 선물했다. 케세르마케르스가 왜 그림에 사인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사실 사인을 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사람들은 반드시 나의 그림을 알아보게 될 것이고,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나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만일 오래 살 수 있도록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확실히 입증해 보일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열정과 고뇌로 짧지만 굵은 생을 불태운 화가, 처절한 영혼의 몸부림으로, 절망을 등에 업고 희망을 그린 불멸의 화가 반 고흐, 뿌리는 죽어도 위대한 예술혼은 영원한 생명으로 남는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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