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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반주(伴奏)

반주는 엄밀히 구분하자면 2중주(duo)를 하는 일이다. 기악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예컨대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반주자라고 하지 않는다. 성악 경우에는 반주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는데 성악이 중심이고 피아노는 이를 뒷받침한다는 뜻이 그 안에 있다. 하기는 우리는 성악가의 이름을 보고 음악회를 가지,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보고 가지 않는다. 근래에는 반주를 전공하는 분야가 생겼지만 오랫동안 반주는 피아노 전공자의 두 번째 선택으로 여겨졌다. 알고 보면 성악가의 숫자만큼이나 반주를 하는 음악가의 숫자가 필요할 텐데도 말이다.

성악가들은 반주자들을 선택하는 데에 신중하다. 반주의 음악에 따라 자신의 연주가 빛나기도 하고 힘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주 횟수가 많은 성악가들은 고정된 반주자를 두기도 한다.

반주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템포의 중심을 잡는 것일 터이다. 성악가가 무대에 나서면 외롭다. 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는 객석을 앞에 두고 혼자다. 오로지 반주자가 자기를 지켜준다. 몇 소절밖에 안 되는 전주를 듣고 호흡을 가다듬어 노래를 시작하는데 그 템포가 흔들리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연습을 통해서 몸에 배인 템포를 무대 위에서 펼쳐주는 것, 그래서 성악가가 안심하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반주자다. 그런 의미에서 반주자는 오히려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한다.

악보에 적힌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성악가들은 많은 섬세한 변화를 주어 음악을 만든다. 어떤 부분을 조금 당기기도 하고 몇몇 음에 더 힘을 싣기도 하고 어떤 구절을 더 부드럽게 혹은 더 강렬하게 노래하기도 한다. 작곡가가 적어놓은 거의 모든 음을 하나하나 다시 만져서 자신의 음악을 만든다고 보면 된다. 기존의 음악텍스트에 자신만의 빛깔을 입히는 것이다. 연습과정을 통하여 같이 음악을 만들어가는 반주자는 그 성악가의 가장 충실한 협조자다.



성악가가 기피하는 타이프의 반주자 중 하나가 '다만 충실한 협조자'다. 자신의 음악을 잘 따라오기만 하고 필요한 개입을 하지 않는 반주자를 성악가들은 답답해한다. 자신의 음악을 한 단계 더 올려주는 견제와 대화와 충돌을 이들이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충실한 협조의 틈틈이 날카로운 개입으로 자신의 음악과 스파크를 일으켜 자신에게 새로운 생기를 일으켜주는 그 맛이 없는 것이다. 때로 그 개입은 0.1초쯤 더 빠른, 100분의 1쯤 강도가 더 센 대답 정도의 섬세한 것이지만 그런 차이의 연속은 음악을 아연 활기 있게도 또는 왠지 답답하게도 만든다.

전통음악에는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고수가 으뜸이고 명창은 그다음이다' 라는 것이다. 고수는 창자가 부르는 소리 한 판을 완전히 몸과 마음에 넣고 흥을 돋울 때와 맺을 때를 가려 음악을 완급을 조절한다. 너스레를 떨어 창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청중보다 먼저 흥을 올려 판을 이끄는 것도 그의 몫이다. 두세 시간 넘어 걸리는 판소리 공연에서 이같은 고수의 역할은 창자에게 사활적이다.

산조에서도 장고반주가 중요해서 고수는 음악 전체를 꿰고 있다. 필요할 때 들어가고 적절할 때 빠지면서 음악을 같이 만들어간다. 추임새는 물론이고 산조의 가락이 성글면 장고의 잔가락으로 메워주고 연주자가 신명 나게 촘촘한 가락을 엮어가면 자신은 가락을 덜어 슬그머니 기다려 준다. 연주자가 흥이 나서 잘하고 있을 때 자기가 나서는 것이 오히려 음악을 깎아 먹는 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주가야말로 소중한 음악가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더불어 음악을 만들면서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는 뛰어난 동반자의 존재가 절실하다. 어찌 음악의 세계뿐이랴. 이런 동반자가 직장과 사회에 동료 혹은 협력자로 활약할 때 또 나랏일의 길목마다에 책임자, 보좌관으로 기용될 때 세상에 생기가 돌 것이다.


이건용 /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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