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데스크 칼럼] "불법인 사람은 없다"

스무 해 남짓 앞으로 거슬러 그 때 만났던 다섯 사람을 떠올렸다. 퀸즈 아파트에 다섯 한인이 모여 살았다. 모두 서류미비자였다. 함께 간 사진기자는 열자마자 바닥에 가득 차 있는 신발을 찍었다. 얼굴을 찍을 수 없어 얘기를 나누며 뒷모습만 보여주고, 얼굴은 흐릿하게 가렸다.

"가게에서 발 닦아요." 첫 마디였다. 사는 게 힘들었지만 밝은 앞날을 꿈꿨다. 보란 듯이 살아갈 내일을 얘기했다. 한 사람은 한국에 돌아가 음식점을 한다. 또 한 사람은 만난 지 몇 해 뒤 정비사가 됐다고, 차를 맡기다가 봤는데 그 뒤로는 모른다. 세 사람은 어디 있는지 아예 모른다.

이민자 체포.추방 작전이 펼쳐지는 바로 이 때 그들이 생각났다. 그 때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보통 스무 해쯤에 한 번씩 정부가 이민정책을 바꾸고 영주권을 줍니다." 그들은 이민 전문 기자가 와서 하는 말이니까 뭘 좀 많이 알겠지 싶어 얼굴에 믿음의 웃음을 지었다.

정부가 이민법을 고쳐 아시안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1965년이었다. 그 뒤 21년이 지난 1986년, 서류미비자 300만 명이 미국에 살았다는 것만 밝히고 영주권을 받았다. 그 다음 스무 해가 지나는 때는 2006년이었다. 그들을 만났을 때가 1999년이니 7~8년만 버텨보자고 했다.



2006년, 정말 될 것도 같았다. 이민법 개혁안이 연방상원을 통과했다. 2년 넘게 미국에 살았던 서류미비자 1200만 명에게 영주권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연방하원에서 막혔다. 2013년에도 비슷한 법안이 상원에서 마련됐는데 또 하원에서 퇴짜를 놨다. 2000년대 거세진 공화당의 '반이민 정책' 때문이었다. 이민자를 마구 욕하면서 보수 유권자들의 이쁨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뻔뻔스러운 꼼수인데 그게 먹혔다.

2019년, 그들을 만난 지 스무 해가 흘렀다. 영주권을 주기는커녕, 더 쓰라리다.

추방령을 받고도 집을 옮기지 않고 사는 한인이 있다. "추방령 받은 사람들 많이 아는데 다들 집을 옮겼어요. 나보고 다들 미쳤다고 해요, 왜 그 집에 그냥 사냐고."

다른 데 가있을 곳도 없다고 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없는 척 하라고 했다. 딴 사람이 잡혀가다 함께 엮일 수 있으니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겨우 그런 말밖에 해줄 수 없다. 추방령은 받았지만 죄진 것이 없는 그에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어림잡아 헤아리는 수밖에 없다.

스무 해 앞에 퀸즈 아파트에서 다섯 사람에게 했던 말이 참 부질없었다. 그래도 내일을 버릴 수 없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외치고 있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김종훈 / 편집국장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