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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스피디 곤잘레스

"Hi, Speedy Gonzales, How are you doing?" 스피디 곤잘레스! (카툰에 나오는 멕시코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쥐) 직장동료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중환자실이 너무 힘들어 심장 전기 생리학 부서로 3년 전에 옮긴 이 친구는 나보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비결이 뭐냐고 따진다. "She is non-stop, that's the secret"라며 다른 친구가 얼른 대답한다. 그렇다 여기 중환자실에서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는 현장감, 박진감 그리고 긴장감에 길들여 있어 정말 가끔 조용하면 폭풍전야처럼 우리는 더 긴장하게 된다.

예리한 관찰, 비판적 사고, 담대한 결정 그리고 신속한 행동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거기에 또 타이밍이라는 변수가 있다. 한 건장한 환자가 65세가 되었다는 이유로 대상포진 예방주사를 맞았다. 불행하게도 가장 무섭고 희귀한 부작용 중 하나인 GBS(Guillain Barre Syndrome)로 입원했다. 증상은 하반신 마비로 시작해 심하면 전신마비로 진행되고 호흡장애가 온다.

어느 날 새벽 환자가 심하게 기침을 한 결과 생명 보호 장치인 호흡기가 빠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호흡이 멈춰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심박동 정지를 일으켰으며 타이밍을 놓쳐 지금은 뇌사상태에 빠져있다. 이 환자의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 나도 화가 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데는 스피드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오래 일하다 보니 자연히 생각과 행동이 빨라진다. 아니 어쩌면 평소에 내 행동이 빨라서 여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100m 달리기 선수였으니 그때부터 나의 피에는 스피드가 흐르고 있었나 보다. 지금도 여럿이서 걷고 행동할 때 스스로에게 슬로다운을 몇 번이고 다짐해도 나 자신은 벌써 훨씬 앞서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시어머님께서도 그만 은퇴하고 쉬엄쉬엄 하라 하신다. 그 말을 지금은 귓등으로 흘려 보낸다. 너무 많은 일을 벌려 놓았기에 접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를 한다는 말은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과 통한다.



스피드를 내는 이유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스피디 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그 많은 욕심은 단 한 가지의 미션, '아름다움의 추구'이다. 난 꽃을 보면 슬프고 젊음을 보면 안타깝다. 꽃은 시들 것이고 젊음은 지나갈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꽃의 내면을 보고, 읽고, 젊음의 의미와 상징을 배운다. 눈에 보이는 유형물보다 보이지 않는 무형물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인간관계에서 솟아오는 따뜻한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 아픈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간절함, 돌연사로 가족을 잃은 망연자실한 투명한 마음, 나는 이 촉촉한 마음을 사랑한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로 가슴에 오는 미동, 그 울림을 받아쓰려고 한다. 중환자실에 오는 환자마다 절박한 스토리가 있다. 민족이나 남녀노소를 넘어 그들이 중환자실에 오게 되면 환자와 가족의 삶은 틀어지고 벌어지고 갈라진다. 눈시울을 벌겋게 물들일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 절박한 스토리에 들어있는 간절함이 가냘픈 시가 되고 글이 되어 힘든 나를 위로한다. 나의 생활터전은 나의 성전이다. 나는 이 성전 안에서 그들 삶의 뿌리를 찾고 심장에 귀 기울이며 함께 울고 웃고 춤추며 노래 부를 것이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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