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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안전거리

자동차 운전을 하며 길을 가다 보면 가끔 뒤에 바싹 붙어 따라오는 차를 만나게 된다. 그것이 불빛 번쩍이는 경찰차이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가슴이 철렁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민간 차량이면 철렁 까지는 가지 않아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뒷문 쪽이 어쩐지 근질거리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커다란 트럭의 큰 얼굴이 뒤창 가까이에서 부릉거리며 달려들면 그만 깜짝 놀라 뒷바퀴가 후들거린다. 운전할 때 아주 싫은 장면이다. 갑자기 정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여유 있게 멈추어 설 수 있는 넉넉한 거리를 유지해 주면 “고맙습니다”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다 충돌이나 접촉사고라도 나면 공연히 사고 처리에 사는 게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 차와 내 차의 적당한 간격을 말하는 ‘안전거리’라는 말이 생겨났다.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같은 모임 등에서 오래 함께 지내어 친해진 남녀가 어느 날 어느 한쪽이 이런 말을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우리 이대로 친구 사이로 지내자.” 이 말은 가까워진 이성 간에 생길 수 있는 어떤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안전거리를 유지하려는 방법이다. 이런 경우 보통 한 쪽은 그 안전거리를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너와 나의 간격을 없이 하여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그런 관계로 발전하면 이 이야기는 바람직한 ‘해피엔딩’이 되고 우리들의 인간관계에서 더없이 좋은 결말이라 말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얽히는 관계 속에서도 언제나 강 건너에 서 있는 듯이 확실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발 하나를 금 밖에 두고 옆에서 걷는 그런 사람이 부담 없다는 좋은 면도 있지만, 전적으로 믿고 동행하기에는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는 면이 있다. 나병 환자촌에서사역하던 선교사 한 분이 어느 날 자신도 나병 환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감사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병 환자들에게 거리 없이 다가가려 해도 자신은 건강한 몸이어서 그네들과 전적으로 한 가족이 될 수 없는 처지였었는데 이제 그것이 없어져서 즉 좋게 표현한 안전거리가 없어지어 그들과 하나 되어 말씀을 나눌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사람 사이에 궁극적인 도달점이 이렇게 하나 되는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이 나타나서 고약한 세월이 우리에게 안전거리를 강요한다. 고속도로 운전 중인 안전제일의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워져야 할 사람들에게 떨어져 지내세요. 요구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얼굴만 보아도 알만한 유명 인사들이, 상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유명 기업들이 너도나도앞다투어 타인과 멀찍이 떨어져서 살라고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 한 귀퉁이가 허전한 느낌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는데 서로의 건강을 믿지 못해 멀찍이 떨어져 이렇게 살아가다가 이런 시간이 자꾸 길어져 정말 마음까지 멀어지는 세상이 될까 봐 걱정된다. 더구나 열심히 만들어낸 과학 기술은 각자 집에 틀어박혀서도 이것저것 하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따로따로 살아가며 기계에 의존한 대화만 주고받는 이상한 풍경이 생겨났다. 이상한 풍경이 정상의 풍경이 되어 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 놓고 어깨동무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려 본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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