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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걷기의 위로

걷고 싶습니다. 저는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낍니다. 물론 여러 사정으로 걷기가 힘드신 분께는 미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별일이 없으면 꼭 걷습니다.

‘걷다’와 ‘가다’는 다리와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걸음은 다리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리라는 단어와 직접 연관이 있는 말로는 ‘달리다’가 있습니다. 종아리를 방언에서는 ‘종다리’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도 다리의 흔적이 보입니다. 허벅지를 ‘신다리’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일본어에서는 다리 족(足)을 쓰고 ‘tari’라고 읽기도 합니다. 이 말은 만족하다의 의미여서 우리말 ‘다리’와 관계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만족(滿足)이라는 말에도 ‘발 족’이 들어 있음을 기억하면 좋을 듯합니다. 만족은 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걷다’와 비슷한 발음이 다리의 의미로 쓰이는 것에는 ‘가랑이’ 정도가 있습니다. 처용가에서는 다리가 네 개라는 표현을 ‘가달이너히어라’라고 하고 있다. 가달이 다리라는 의미입니다. 가다라는 말도 어원적으로는 걷다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 근본적이고 구체적으로는 다리, 발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가는 것은 다리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가다라는 말은 앞이라는 느낌과 연결이 됩니다. 뒤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보통 간다고 하면 앞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가는 것은 미래를 의미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계속을 의미합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이 말도 재미있는 말입니다. ‘뜀이나 달림아 날 살려라’나 ‘다리야 날 살려라’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걸어서 도망가면 곧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납니다. 어찌 보면 걸음과 달림, 뜀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뜀은 달림에 비해서 상하 동작의 느낌이 있습니다. 뜀틀의 느낌을 생각해 보면 알 겁니다. 제자리 뛰기나 멀리 뛰기를 생각해 보면 느낌이 더 확실해 집니다. 걸음에도 빠른 걸음이 있기 때문에 걸음으로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을 겁니다.



발은 모양이 앞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뒷걸음은 어색한 것이고, 뒷걸음치는 것은 두려움이나 비겁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앞으로 향하는 것은 긍정의 의미이고, 전진의 의미입니다. 과거는 과거로 남겨둔 채, 지금 내 발걸음을 지켜보고 앞으로 가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겁니다. 걸음의 미덕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오고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직 오고 있는 겁니다. 미래에 내 발길을 맡기는 것, 내가 주체적으로 걸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걷는 것은 몸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마음의 건강에는 무엇보다도 축복 같은 힘을 줍니다. 최근 보통의 보폭보다 10센티미터 정도 더 넓게 걷기가 유행입니다. 넓게 걸으면 허리도 펴지고 운동 효과도 더 커진다고 합니다. 아침마다 걸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보통은 연세가 있는 분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아침 시간이어서 그럴 겁니다. 저녁에 나가보면 젊은 사람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띕니다. 퇴근하거나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걸으러 나온 사람들이겠죠.

걷는 사람 중에는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힘내라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중 어떤 분께는 실제로 인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몸이 힘든 분께 인사를 드리는 걸 싫어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막상 인사를 드리니 찌푸린 얼굴이 활짝 펴지네요. 처음에는 잘 못 걸으시는 듯 보였는데, 이제는 아주 잘 뛰십니다. 몸을 잘 못 가누는 따님과 걷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아직 인사는 못 드렸습니다만, 언젠가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서로가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걸으면서 많은 삶을 만납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위로합니다. 힘들다면 한 발 더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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