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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수 속병 클리닉] 검사 수치 사이에 숨은 빈혈

어느 날 몸이 쉬 피곤해진다면서 60대 남자분이 병원을 찾아오셨다. 세탁소를 경영하는 K 씨는 과거에는 하루에 12시간을 일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왠지 요새는 8시간을 버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지난 반년 동안 두 곳의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다 받았는데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혈액검사로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다”라고 말한 K 씨는 아무 검사결과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일단 과거 검진 기록을 요청하도록 했다.

검진기록을 본 결과 K 씨는 과거 4개월 동안, 2번의 종합 혈액검사를 받았다. 당뇨, 콜레스테롤, 간 기능, 갑상선, 전립선 및 모든 화학검사, 소변검사 그리고 빈혈 검사가 K 씨 말대로 정상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의심쩍은 점이 발견되었다. 헤모글로빈(혈색소) 수치를 자세히 살펴보니 2월에는 14.5이었던 수치가 5월에는 13.5로 약간 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남자 성인의 정상 헤모글로빈 치수는 13~13.5에서 17~18까지이다. 이렇게 정상범위가 넓어 정상도 정상 나름일 수가 있다) 또 다른 병원에서 받은 K 씨의 1년 전 혈액 검사를 추적해 본 결과 그 당시 헤모글로빈은 15.4이었다. 다시 말해, 지난 1년 동안의 K 씨의 혈색소 수치는 모두 정상범위 안에 있었지만, 총 1.9(15.4-13.5)가 떨어진 셈이었다. 혈색소 검사를 다시 해보니 12.4로 더 떨어져 있었고 수지 항문 검사결과 잠혈변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내시경 검사와 정밀검진을 통해 대장 첫 부분에서 악성 궤양성 종양이 발견되었다. K 씨의 빈혈은 이 궤양성 종양에서 조금씩 출혈한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행히 대장암 1기로 진단되어 대장부분절제 수술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K 씨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새로운 병원과 의사를 찾아갈 때는 과거 진료기록을 지참해야 한다.



둘째, 정상도 정상 나름이다. K 씨의 혈색소 검사는 세 번 모두 정상 범위에 있었지만, 혈색소의 농도가 차차 줄어들고 있었다. 각각 정상이라는 검사결과를 받았다 하더라도 결과 수치의 흐름이 어떠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K 씨는 피곤을 계속 호소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풀린 셈이나, 어떤 경우에는, 증세가 뒤늦게 나타나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현철수 박사 - 마이애미 의대 졸업. 예일대병원 위장, 간내과 전문의 수료. 로체스터 대학 생물리학 박사,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 스토니브룩, 코넬 의대 위장내과, 간내과 겸임 교수. 현재 뉴저지주 의료감독위원회 위원, 아시안 아메리칸 위암 테스크포스와 바이러스 간염 연구센터를 창설, 위암 및 간질환에 대한 캠페인과 문화, 인종적 격차에서 오는 글로벌 의료의 불균형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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