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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삶이 내게 물어올 때

메이저리그가 끝나면 한 해를 보낼 준비에 들어간다. 야채 밭도 정리하고 떨어진 낙엽을 쓸어 길가에 모아 놓는다. 소낙비가 쏟아지면서 낙엽들이 무게에 짓눌려 떨어지거나 바람이 휩쓸어도 안간힘을 쓰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대항한다. 아직도 몇 가지에는 낙엽이 붙어있다. 그것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잔디 위에 서리가 하얗게 덮어져 있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젊었을 때는 꿈과 불안이 교차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습관에 묻혔다. 자신에 대한 지루한 숨 막힘이 다가와도 그저 인생이 뭐 별거야 하는 푸념만으로도 감춰지곤 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책임감으로 홀로 버텨야 했던 시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장식해 버렸다. 아픈 자식들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 밤새 기도했던 순간도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이 비단 나만이었을까. 마음은 아직인데 몸은 자기에게도 관심을 가져 달라는 비명을 질러 밤새 뒤적이게 한다.

동양화는 여백의 미로 대변된다. 한가로움은 자신을 비워내는 특별한 시기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기대하거나 타인의 위안을 믿지 말자. 결국은 자신의 몫이다. 강물은 강바닥을 모두 채운 뒤에야 흐른다. 사람마다 고통의 양은 각기 다르다. 견뎌야 한다는 사실 만큼은 평등하다.

화요일, 목요일은 가게 문을 닫고 하나뿐인 손자를 돌보는 날이다. 4살이 되는데 눈을 뜨자마자 할머니 놀자 한다. 온종일 움직이면서 에너지 고갈이 없다. 소파에 앉아있는데 힘차게 달려오면서 내 왼쪽 눈 위 이마를 들이받았다. 몹시 아팠다. 하룻밤 지나고 보니 불룩 부어올랐다. 그 뒤 아무런 증상 없이 1주일이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데 앞이 흐릿했다. 혹시 백내장이 생겼나 은근히 걱정했다. 그다음 날은 앞이 침침하고 더블 라인이 보였다. 그때야 생각이 났다. 손자 녀석이 들이받은 이마의 시신경을 다친 모양이다.



말도 못하고 혼자 고민을 하면서 방법을 찾는다. 위로 눈을 뜨거나 아래로 물건을 내려다보면 괜찮다. 그런데 바로 보는 것이 문제다. 운전이나 일을 할 때면 머리를 아래로 약간 내리면 정상으로 보인다. 아주 불편하지만 그래도 매일 하는 일이라서 습관적으로 반복해 본다. 어려운 것은 재봉틀 바늘에 실을 꿰는 일이다. 초점이 맞지 않아 헛손질을 10번쯤 반복한다. 이상하게도 한쪽 눈을 감으면 정상으로 보인다. 두 눈을 뜨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왼쪽 아래 눈꺼풀을 젖혀 보니 실핏줄이 오른쪽보다 부어 있고 눈을 뜨고 감기도 불편하다. 머지않아 사고가 아닌 이런 증상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는 닳아 없어지길 바랄 뿐이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길이 나답게 사는 것인지 자문자답해본다. 최고의 삶이 아닌 최선의 삶. 편안한 삶이 아닌 방랑 인의 인생을 추구한 것 같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외롭기보다는 고독할 수 있는 용기. 최고가 아닌 유일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의 평정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스스로 깊은 우물에서 사색과 향기를 길어내야 한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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