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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떠도는 사람들

“Don’t go home, Stay on the road!”

자랑스러운 2세 작가 이민진이 ‘파친코’를 낸 직후에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그 유명한 소설이 하루아침에 뜬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북 사인회를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인데도, 그것을 들고 길 위를 떠돌아야 했다니. 미국 아줌마들의 북클럽 수다에 오르는 책이 되자, 이번에는 강연을 하러 바쁘게 길을 다닌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길은 왜 그렇게 멀기만 할까??

제시카 브루더가 2017년에 발표한 ‘노마드 랜드(방랑의 땅)’는 마치 팬데믹을 예고한 책 같기도 하다. 렌트와 모기지를 못 내서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다.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결혼에 실패했고, 연금을 잃었다. 이들은 밴에 세간살이를 싣고 떠난다. 여름에는 국립공원에서 일하고, 가을에는 사과 따러 농장에 가고, 겨울에는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일한다. 그들은 자신을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부른다. 홈리스는 결코 아니다. 오가다 만난 사람들이 낮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밤에는 캠프파이어에 파산 서류를 던져 넣는다. 거리 페스티벌에서 들리는 바가본드 노래는 자신들의 이야기다. ‘이 땅은 내 것 네 것(this land was made for us and me)’이라며 넓은 땅을 빙빙 돌아다닌다.

나의 방랑은 미국 산골에서 시작되었다. 공간이 딱 4등분으로 나눠진 집은 처음 봤다. 풍경을 감 잡을 수 없는 유리창에 백 년 된 거울은 제멋대로 나를 왜곡하여 예쁘고 날씬하게 보이게 했다. 마법에 취해서 아주 잠깐은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여겼다.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우락부락한 세면대는 ‘너는 누구냐’ 하고 나를 강하게 거부했다. 336 그린 스트리트 앞으로는 사람도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존 덴버의 노래, ‘웨스트버지니아 어모스트 헤븐’은 가사가 틀린 노래였다.



김포공항에서 이별하면서 찍은 사진은 분명 컬러 사진이었다. 하지만 내가 온 미국은 문화의 사각지대였고, 나는 제3 세계의 흑백 사진에서 튀어나온 여자였다. 너무 뚱뚱해 걷기조차 힘든 사람들, 그중에 나의 최초의 영어 선생 루시도 있었다. 눈이 파랬고 땋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끼었다. ESL 수업에서는 초보적인 대화가 오갔다. 아침에 뭐를 먹었냐는 질문에 자몽과 시리얼을 먹었다고 했더니, 강사는 어떻게 먹었냐고, 껍질을 까서 오렌지처럼 먹었냐고 물어본다. 나는 반을 갈라서 스푼으로 떠먹었다고 했다. 강사는 그렇게 먹는 것을 어디서 배웠냐고 다시 물어봤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샀냐면서 궁금해했다. 한국에서 옷을 샀으며, 한국에서 그렇게 먹었다고 답했다.

길 떠나라고 부모님이 짝 지워준 남자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어서 방향을 결정했다. 유홀 트럭에 구차한 살림살이를 싣고 불어난 식구를 태우고 하이웨이를 달렸다. 짐을 싸고 풀고 집을 열 번쯤 옮겼다. 집은 쉬라고 있는 곳인데 한 곳에서 마냥 쉴 수도 없다. 집을 얻으려면 길 위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한다는 아이러니다. 인류는 원래 노마드였던가?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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