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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걸으면 해결됩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전 포트리고교 교사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 근처 조그만 트레일이 하나 있는데, 전에는 숲이 어둡고 후미져 잘 안 들어갔다. 사람도 별로 없어 한낮에도 으스스했다. 그 트레일이 요즘은 종일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동네 골목도 걷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헬스클럽도 닫히고 갈 곳도 없이 집에만 있다 보니, 걷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 된 듯하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최대 온라인 미디어 중 하나인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웰빙에 관한 그녀의 베스트셀러 ‘Thrive’라는 책에서 걷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기원 전 4세기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한 말 “solvitur ambulando(걷는 것이 해결한다)”를 인용한다. 창업 당시 첫 투자자도 그녀와 하이킹 중에 결정됐으며, 아트 섹션을 추가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스탭과 걷는 중 나왔다고 한다. 중요한 미팅도 회의실 대신 걸으며 하는 때가 많다는 그녀는, 심지어 출산 전 진통이 왔을 때도 병원 인근 호텔에서 산파와 걸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호텔 정원과 잔디와 로비를 오가며 진통을 하다, 출산 한 시간 앞두고 병원으로 갔고, 도착 30분 만에 딸을 낳았다니 놀랍고도 기발하다.

걷기가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정신 건강에도 걷기는 엄청난 유익을 준다. 우울이나 불안 장애에 가장 많이 먹는 약이 프로잭, 졸로프트 같은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약들이다. 세로토닌은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주요 신경전달 물질의 하나다. 세로토닌이 뇌 속 신경전달 체계에 오래 머물러야 우리 마음이 늘 안정되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체내에 너무 빨리 재흡수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뇌 신경전달 체계에 세로토닌이 부족하여 기질적으로 우울하거나 불안하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앓는 사람들을 정신력이 약하거나 의지가 박약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뇌 화학물질의 불균형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치료가 필요한 하나의 질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백프로 뇌에서 생성될 것 같지만, 사실 세로토닌의 95퍼센트는 소장에서 만들어진다. 장을 제 2의 뇌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 뇌는 물에 떠 있는 두부 같아서 가벼운 흔들림으로도 자극을 받아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걸으며 신체가 리듬을 느낄 때, 뇌가 활성화되고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 그래서 걸을 의지가 있는 사람이면 햇볕 속을 걸으면서 세로토닌을 보충하고 그 외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일들을 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 약을 안 먹어도 말이다. 그러나 집 밖으로 나올 의지조차 없을 정도로 우울이 심하다면, 약의 도움으로라도 기분을 끌어올려야 한다. 집에만 있는 것은 우울증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이나 불안증 그리고 집중력 문제를 가진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이 세 가지는 내가 상담하는 분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분은 이 청소년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쇼핑몰을 매일 걷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하이킹을 하게 했다. 몇 달 후 어느 그룹의 정신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는가는 말 안 해도 뻔하다. 하이킹은 정신 건강을 증진시킨다. 우울이나 불안을 감소시키고 집중력 향상까지도 가져왔다고 한다.

한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는 걷기가 신체 뿐 아니라 뇌를 맑게 해 주는 마음을 위한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걷기 시작 5분이면 세로토닌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세로토닌 걷기의 첫 단계로 가볍게 몸을 풀고, 평소보다 조금 빠르고 보폭은 넓게, 가슴을 펴고 등과 허리는 반듯하게 호흡은 세 번 내쉬고 한 번 들이마시는 식을 권한다. 나는 걸으면서 다른 일들은 잊고 그 순간을 즐기면서, 시각적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 물을 감상하든지, 청각적으로 좋은 음악이나 강연을 듣기를 권하고 싶다.

요즘 오피스에서의 대면 상담이 힘들어진 후로 숲길을 걸으면서 상담을 많이 한다. 특히 요즘 밤낮이 바뀌고 집귀신이 되어버린 틴에이저들 때문에 부모님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아이들을 하이킹 트레일로 불러내자. 공원으로, 집 밖으로 불러내자. 함께 걸으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9월에도 대면 수업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가는 요즈음, 아이고 어른이고 모두의 정신 건강이 매우 염려된다. 걷고 또 걸을 때다. LA 사는 친구 남편이 요즘 매일 몇 보 걸었는지를 페이스북에 올린다. 기본적으로 만보 이상이다. 알고 보니 혼자가 아니고 틴에이저 딸과 함께다. 요즘 이런 말을 올렸다. 걸으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딸을 되찾았다고. 걸으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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