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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치매가 아니라 우울증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전 포트리고교 교사

60대 초반임에도 긴 생머리가 어울리는 이 예쁜 엄마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두 아들을 소아과 의사와 치과 의사로 키웠다. 자기 건물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멋진 옷을 입고 잘 지내는 듯했지만, 아들들이 결혼, 연애하면서 밤마다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잦아지더니 어느 날부터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가 하면,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을 몰라 찻길 한복판에 주저앉은 모습으로 이혼한 며느리에게 발견되었다. 역시 의사인 전 며느리의 강권으로 검사를 받은 결과, 알코올과 우울증으로 인한 가성 치매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러자 아들들도 엄마에게 더 신경을 쓰고 엄마는 며느리를 다시 받아들인다. 하하, 아마 엄청난 해피엔딩으로 곧 끝날 것 같은, 한 KBS 주말 드라마 이야기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성치매’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치매 같지만, 치매가 아닌, 가성 치매(Pseudodementia)는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흔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성 치매가 치매와 다른 점은 이 증상의 우울증과의 관계이다. 노인성 우울증을 앓는 분들의 15%에서 가성 치매가 나타난다고 한다. 기억력이 감퇴하고 집중력이 저하되는 등,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 일단 무조건 치매 초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치매인 줄 알고 병원을 찾은 노인 10명 중 4명은 우울증으로 인한 가성 치매라는 보고가 있다. 가성 치매는 뇌 병변이 없는 단지 기능성 장애이기 때문에, 우울증을 잘 치료하면 인지 기능이 회복되는 경우가 거의 80%에 이른다고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하던 가족을 병 혹은 사고로 잃거나, 입대, 취업, 이별 등으로 곁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누구나 다 우울하다. 나도 십년 전 봄 남편을 암으로 보내고, 그 겨울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모든 정신력과 신앙을 동원하여 이겨내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내 생애에 행복은 이제 끝, 다신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던 그해 겨울, 몸살처럼 두 달을 아팠다. 우울증은 우울감과 절망감, 그리고 무력감 등의 정신적 증상 외에도 두통, 복통, 근육통 등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너무 오래 가는 감기몸살이 이상하다는 선생님의 권유로, 몸에 동위원소를 넣고 하는 갑상선 정밀 검사까지 받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도 매일 오후만 되면 너무 아파 거의 책상에 엎드려 수업을 해야 했던 나의 몸살기, 그것이 나의 우울증 증상이었던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늘 피곤하다.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고,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다. 잠이 안 온다, 식욕이 없고 소화도 안 된다. 머리나 몸 여기저기가 자꾸 아프다. 나이 들어가시는 부모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셔서, 병원에 모시고 가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꾀병 내지는 주의를 끌려는 행동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바로 우울증 증상이다. 노인성 우울증이 작게는 8%에서 많으면 50%까지 치매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이때 가족이나 친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잘 지내시려니 하지 말고, 바쁘더라도 자주 연락하자. 함께 시간을 보내드리자. 사랑을 표현해드리자. 그리고 혹시 상담이나 약이 필요하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한다. 나에게도 70대와 80대분들도 상담해드린 경험이 있다. 공감하고 이야기만 관심을 가지고 들어드려도 우울증이 호전되셨다.



시작 시기를 잘 알 수 없고 수년에 걸쳐 진행되는 치매와 달리, 가성치매는 시작점을 알 수 있고 비교적 진행이 빠르다. 그래서 빨리 우울증을 치료해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는 부모님은 우선 우울증을 의심해보기를 권한다. 치매로 단정하고 우울증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실제 치매가 걸리셨어도 그중 30~40%는 우울증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기능을 더 빨리 잃게 된다. 물론 실제 치매를 우울증으로 단정하고 치매 치료를 안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우울증인데 치매 치료를 하다 보니 우울증 치료 시기를 놓쳐 우울증만 더 악화하고 각종 기능에 이상이 생기게 되는 폐해가 더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에는 늘 밖에 나가서 활동하니까, 저녁에 집에서 혼자 조용히 쉬는 시간이, 와, 그렇게 좋고 편했다. 하지만 요즘은 상담도 거의 화상으로 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전 같지 않으니, 낮에도, 밤에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팬데믹 시대 혼자 놀기”라는 칼럼도 쓴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요즘, 이그, 좀 짜증이 나기도 한다. 공연히 아들들한테, 얘들아, 엄마가 그렇게 잘 지내는 것 같니? 이런 말을 던져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했으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노화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코로나 공포로 더 외출도 못 하고, 힘든 반 격리 상태를 오직 “밥심”으로 살아가시는 연로하신 부모님들께, 자녀들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은 우울감 해소의 최고 보약이고 명약이다. 지금 바로, 연락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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