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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평소 존경하던 여의사인 한원주 박사가 9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 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년 전 인간 극장을 통해서였다. 당시 92세,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로 활동하고 계실 때였다. 1926년, 대대로 기독교 집안에서 옥고까지 치르신 독립운동가 부모의 삼녀로 태어나신 이 분은, 의사인 아버지가 시간 날 때마다 무료 진료 봉사하시는 것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의사가 된 이 분도 물리학자 남편을 만나 내과를 개업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52세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갑자기 잃게 되는 큰 시련을 만난다.

그녀의 모든 삶이 무너졌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동안 바빠서 소홀히 했던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멀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찾고 나니, 남은 삶의 지표가 보였다. 의료 봉사였다. 우리들 의원이라는 의료선교 병원을 설립하여 처음 10년은 시간제로, 이후 20년은 풀타임으로 일하셨다. 개업의 시절 수입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사례였지만 기쁨은 몇 배가 되었다. 의사, 사업가, 사회복지사, 목사들과 팀이 되어 환자의 전인 치유를 도왔다. 몸의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문제도 상담해주고, 원하면 신앙으로 안내하고 최종적으로 취업까지 주선해주는 이 프로그램은 세계의 주목을 받아 독일 어느 단체로부터 3년간 지원을 받기도 했다.

82세에 이 병원을 은퇴한 한원주 박사는, 인제 그만 쉬시라는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일을 찾았다. 하나님이 주신 의사로서의 기술과 재능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남양주 매그너스 요양병원에서 의사를 모집하는 데 지원했다. 나이 때문에 주저하던 병원 측은, 만나보니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며 충분한 실력을 겸비하신 것을 보고 주저 없이 이 분을 내과 과장으로 모셨다. 연령이 걱정되어 의료 공단에서 감사가 나온 적도 있는데, 능숙히 의사로서의 일을 처리하시는 모습에 감탄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오히려 한원주 박사 때문에 그 병원 의료 기록에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다.

그 요양병원에서 박사님은 말도 안 되는 작은 사례비에, 병실 하나를 본인의 숙소로 정해 기거하셨다. 주말에는 버스와 기차를 6번 갈아타고 2시간 반 걸려 본인의 아파트로 갔다가 월요일 아침 돌아오셨다. 주말에도 여의사회와 함께 봉사하고, 배우지 않는 것은 환자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시며, 학회와 세미나에도 참석하여 배우기를 계속하셨다. 봉사를 인정받아 성천상을 받고 받은 1억의 상금도 모두 기부하시고, 평소 사례비도 쪼개어 여러 기관을 후원하며 사셨다.



이 분은 사랑으로 병을 나을 수 있다는 지론으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평생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하셨다. 특히 요양병원에서 진료하시던 지난 10여년간, 함께 노년기를 살아가는 담당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진료하면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들의 인생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이 분은 몸만 아니라 정신까지 보듬어주는 진정한 의사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돌아보면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 큰 시련이었지만 사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아마 남편과 현실에 안주하면서 여전히 저와 제 가족만을 생각하면 돈 버는 데 급급하며 이기적으로 살았겠죠. 지금까지처럼 봉사하는 삶은 없었을 겁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죠.” 시련이 피워낸 아름다운 꽃의 깊은 향기가 그분의 삶에서 느껴진다.

교사로 살다 65세쯤 은퇴해서, 그때쯤 역시 은퇴할 목사 남편과 함께 세계 여러 곳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방문해서 위로하고 도와드리며 살겠다는 나의 인생 시나리오는, 10년 전 남편이 먼저 하나님 앞으로 갔을 때 다시 쓰여야 했다. 길을 잃고 우울의 늪에 잠겨있다 찾게 된 심리치료사로서의 제2의 인생,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까 하는 질문을 간혹 하던 중, 한원주 박사의 삶은 내게 큰 교훈을 준다. 놀면 뭐할 것인가? 나도 내가 상담치료를 할 수 있는 정신력과 신체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너무 허약하여 수학여행을 따라 가본 적이 없고 체육 시간에는 앉아서 구경만 해야 했다는 박사님은, 최고령 현역 의사로 일할 만큼 건강의 축복을 받았다. 돌아가시기 삼주 전까지도 진료를 하시다, 노환으로 약 두 주 입원하신 후, 본인이 일하시던 요양병원으로 돌아와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으니. 가시기 사흘 전 자녀들과의 영상 통화에서 박사님은 고요한 표정으로 세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이 메시지가 참으로 간절한, 암울하기만 한 2020년 가을, 박사님의 삶을 돌아본다.


김선주/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전 포트리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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