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나뭇잎의 색깔
안개가 나의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 간다시야가 어둑해진 촉촉한 아침 길
나뭇잎이 다가와 눈을 크게 뜨라 속삭인다
잽싸게 눈꺼풀 위를 구르는 이슬방울
감았던 눈을 뜰 때 너의 정체가 드러나듯
하늘과 땅의 관계는
꽃들의 치열한 향기 경쟁을
어둠의 수다는 먼 조상들의 용맹을 베껴
처음 내딛는 발걸음의 길과 눈을 열리게 한다
오싹한 한기로 나뭇잎의 얼굴을 핥는
이슬방울들 욕망의 그림을 그린다
꽃향기와 새소리의 고향을
무화과 가지를 울타리에 꽂아 싹을 틔우듯
기억은 의지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생명력과 사랑의 눈을 가지고 있는 세상의 눈
생명력을 잃은 눈은 눈이 아니다
직립하기를 좋아하는 혈관 속
나뭇잎을 사랑하는 나이테의 숨김
나이테 감기는 소리가 나뭇잎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정숙자 / 시인·아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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