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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마음의 여행

어느덧 만추로 가는 길목, 이른 아침에 쌀쌀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미사를 드리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성모님 정원의 작은 숲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져 오고, 이 소리에 문득 옛날을 떠올립니다.

가을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시끄럽다 짜증내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 밤중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에 맞추어 울기라도 하듯 정겨워진 소리에 철학자가 되던 사춘기 시절 등. 가을의 귀뚜라미 소리가 사색으로 들어가는 종소리 같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속 고군분투의 일상에서 들려도 들리지 않는 무뎌진 귀와 가뭄의 마른 밭떼기처럼 메마른 가슴에 귀뚜라미 소리는 점점 사라져가고 더 이상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성당으로 가는 이 짧은 길에 아직은 덜 깬 귓가에 들린 귀뚜라미 소리로 시작된 잠시간의 사색이 가슴을 따듯하게 만들고 하루의 시작을 뿌듯하게 했습니다.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면 복잡한 국내와 세계 정세에 대한 뉴스와 경제적 문제에 관한 뉴스 그리고 건강 상식에 관한 뉴스가 장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하루 종일 유투브를 뒤지며 듣고 싶은 뉴스나 이야기를 찾는다고 합니다. 요즘 어른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계속 스마트폰을 들여다 봅니다. 유투브를 뒤적거리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일상의 유일한 취미이며 낙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결국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스폰지처럼 받아들여 그들의 판단에 따라 웃고 우는 수동적 삶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릴 적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라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바보 상자'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이 좋은 날씨 남의 생각과 판단에 일희일비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을 위해 나만의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도 밀려오는 불쌍한 하느님의 백성을 위로하고 치유해 주시며 복음을 전해주느라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서 혼자만의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교회에서는 이를 '피정'이라고 합니다.

바쁜 생활에 멀리 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을 지라도 일상의 작은 시간을 '마음의 여행'으로 할애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 '마음의 여행' 마저도 사치로 느껴집니다. 대개 '걱정'과 '염려' 때문입니다.

요즘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은 참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2000년 동안 베스트 셀러인 성경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명상으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면 좋겠습니다.

희망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도 자주 인용하신 '이사야서'를 읽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성경은 하느님 창조의 이야기인 '창세기'나 '요나의 이야기'가 좋습니다.

삶의 부조리를 철학적으로 깊이 고민 하고 싶으면 '욥기'를 읽으면서 고민해도 좋겠습니다. 가을 시를 읽고 싶으면 '시편'을 읽어도 좋고, 지혜의 격언이 필요하면 '지혜서'도 좋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들리는 하느님의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대처를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지쳐 무뎌진 귓가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잠시 마음의 여행을 떠나도 좋겠습니다. 가을의 가슴 뿌듯한 바람과 함께.


김문수 앤드류/성 바오로 정하상 천주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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