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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쥐 잡는 남자

이수임 / 화가·맨해튼
이수임 / 화가·맨해튼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1/11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20/01/10 17:42

8명의 오랜 지인들과 모처럼 모임에서 만났다. 연말이기도 하고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다들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헤어지기 싫다는 표정들이다. 어쩌겠는가. 장소를 옮겨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8명 중 6명은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 대학을 나왔다. 나를 포함해서 다른 한 명은 그 당시 프랫 대학을 방문하고는 주변이 하도 위험해서 다른 학교를 선택했다. 공부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어쩌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갔다. 프랫 대학 근처 머틀과 윌로비 애비뉴에서 강도당한 이야기였다. 지금은 고색창연한 브라운스톤 건물들이 즐비한 안전한 동네가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택시 운전사도 가지 않을 정도로 험악했다. 대낮에도 너나 할 것 없이 강도를 당했다.

한 지인은 ‘The twilight zone, A stop at Willoughby’ 호러영화를 본 후 윌로비 애비뉴가 더욱더 무서워 자신을 보호해줄 남자가 필요해서 서둘러 결혼했단다. 또 다른 지인은 훤한 대낮에 불한당한테 가방을 빼앗긴 후 방학 때 서울에 가서 뉴욕으로 다시 가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프랫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나야 할 말이 없어 조용히 있다가 “아니 강도도 없어졌지만, 그 많던 쥐와 바퀴벌레가 다 어디로 간 거야”하고 끼어들었다. “없기는 새벽에 맨해튼 길바닥에 팔뚝만 한 쥐가 다니는데. 그만큼 우리가 모두 어려운 시절을 벗어나 좋은 곳에서 살기 때문이지”라는 말에 움찔했다.

예전엔 스튜디오에 돌아와 불을 켜면 바퀴벌레들이 부리나케 숨는 것을 보고 놀라곤 했었다. 그릇을 일일이 지퍼백에 넣었다가 꺼내서 사용했던 지인도 있다. 생선 굽는 냄새를 참지 못하고 수시로 나오는 생쥐를 보고 의자 위에 올라가 소리를 질러 됐다. 난 쥐를 강도만큼이나 끔찍이 싫어한다. 아무래도 쥐 잡아줄 남자가 있어야 그나마 견딜 수 있겠다 싶어 쥐 잘 잡을 만한 남자와 결혼했다.

내 남편은 쥐를 잘 잡는다. 노란 치즈 조각에다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리면 새끼손가락만 한 쥐들이 줄줄이 걸려든다. 간혹 비틀대는 놈은 뒤뜰에다 그냥 거름도 할 겸 묻어버린다. 옆집과의 벽 틈바구니에서 떨어지는 어린 참새의 주검과 함께 뒤 뜰의 흙은 더욱 윤기를 띤다.

날강도 때문에 그리고 쥐 잡는 남자가 필요해서 조건 따지지 않고 결혼했지만, 지금은 쥐 없고 눈알 굴리는 불한당이 드문 곳에서 다들 잘 산다. 밤새워 수다를 떨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수많은 어려운 시절 사연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을 누르고 지인들의 사연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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