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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흥얼거리는 한여름

굳이 지금은 불러주는 이는 없지만 나는 별명이 많았다. 도토리·오이·선인장·캐시 부인·만두 부인·이 준비 그리고 나 스스로 붙인 독거 부인 등이다.

도토리와 오이야 내 생김새로, 선인장은 외출도 하지 않고 가시 돋친 듯 까칠한 모습으로 창가를 내다보는 나의 일상에서 붙여졌다.

서울 친정에 갈 때마다 아버지가 “뭐 사줄까?” 하면 나의 대답은 무조건 “아버지 현찰로 줘”였다. 시아버지가 결혼반지로 다이아몬드를 사주신다고 했을 때도 “캐시로 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인다고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LA 시집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지 않고 신기한 듯 TV 앞에 붙어 있었다. 시아버지가 혀를 차시며 “아무리 그래도 집안에 TV는 있어야 할 게 아니냐”며 사주시겠다고 했다. “아버님 돈으로 주세요” 했더니 “아니다” 하시며 아예 TV를 사서 우격다짐으로 비행기에 실어주셨다. 돈으로 줘 봤자 사지 않을 것이 뻔하다며. 식구들이 히죽대며 붙여준 나의 별명은 캐시 부인.

나는 만두를 빠른 손놀림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량을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다. 물론 만들어 놓은 만두 맛은 매번 들쑥날쑥하다. 냉장고 청소도 할 겸 남아도는 식자재로 적절히 섞어 만들기 때문이다. 만두를 빨리 만드는 내가 LA 시집에만 가면 시어머니가 “만두부인, 솜씨를 발휘해야지”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나는 아프지 않은 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미루다 보면 기분이 슬슬 까칠해지기 때문이다. 신문에 나갈 글도 미리미리 생각날 때마다 오며 가며 써 놓는다.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신문사에 글을 늦게 보낸 적이 없다. 물론 내야 할 빌도 써야 할 글도 자다가도 생각나면 일어나서 쓰고 내고 한다. 그래서 나의 또 다른 별명은 이 준비다.

위의 별명들은 남편을 포함한 남들이 붙여준 것이다. 요즈음 나 자신을 내가 자세히 관찰하다 스스로 붙여준 별명이 있다. 독거 부인이다. 주야장천 혼자 있다.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뭔가 계속하기 때문이다. 작업하다 글 쓰다 책 읽고. 할 일이 없으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라도 찾아 테이프에 붙인다. 아니면 멸치 똥이라도 딴다.

뒤틀린 마른 멸치 머리를 떼어내고 배를 갈라 속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잠재해 있던 옛일과 미래에 관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생각에 몰두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 멸치를 마이크로 오븐에 잠깐 읽히고 매운 고추를 잘게 썰어 고추장을 넣은 양념장에 묻힌다. 갓 한 잡곡밥과 먹으면 뱃살이 불어난다.

수많은 인생이 덧없이 사라지는 요즈음 이런 소소한 일거리라도 붙잡고 흥얼대면서 보내야지 어느 누가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겠는가!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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