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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순교자의 본을 받아

금년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많은 순교자를 기억하게 하는 해이다. 지난 11월 29일 서울에 있는 서소문교회에서는 창립목사이며 한국동란 중 순교하신 김동철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가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한 2주 자가격리 상황속에서도 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달려갔던 아들 김창길 목사(뉴저지장로교회 원로목사)는 회고담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고백했던 바울과 같은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일생을 회고하며 오늘날 주의 종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었다.

야성 김동철목사는 함경북도에서 출생, 만주 간도성으로 이주해 협성신학교(현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선정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 만주가 점점 공산화하자 공산당으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린 아내가 자유의 나라 남한으로 이주하자고 애원하자 교인들을 놔두고 나만 살겠다고 떠날 수 없다고 했다. 4년 후 6.25가 발발하자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날 때, 아들 다섯과 아내는 피난보내고 홀로 남아 주일예배를 집례하고 교인들과 교회당을 지켰다. 그는 결국 공산당에 납치돼 1950년 12월 압록강 연안에서 순교하게 된다. 야성 김동철 목사는 복음 전하는 사명과 양떼를 지키기 위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예일대학에서 목회학 석사학위를 마친 클락 폴링은 제1차 세계 대전때 군목으로 근무했던 아버지의 뒤를 좇아 군목이 되기로 결심하고 군목훈련을 받는 중 연합감리교 목사인 조지 폭스와 유대교 랍비인 조지 구드, 캐톨릭 사제인 존 워싱톤을 만나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 네 군목들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1943년 1월 23일 뉴욕항을 떠난 연합군 병력 수송선 도체스터호에 함께 탑승, 항해 중 12일만에 독일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를 맞게 된다. 네 군목들은 침착하게 아수라장이 된 군인들을 진정시키고 구명자켓을 나눠 주었다. 구명자켓이 모자라자 네 군목들은 즉시 자신들의 구명복을 벗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네명의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생존자 그레이디 클락은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 네 군목이 선체 위에서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군목 폴링은 승선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그것은 옳지않습니다. 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절대로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의무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필자는 순교자들의 얘기를 잊지말고 기억하고 전파해야 된다고 믿는다. 세월이 악해서 일까?.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기 마련이다. 과연 우리는 부르심 받은 주의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혹시 탐욕이 먼저 앞서지는 않는지 점검해봐야하지 않을까. 진정 정의를 위해 사는가 아니면 사익을 좇고 있는가. 명예와 권력을 좇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순교자들의 거울 앞에 설 때 나의 모습은 어떨까?.


김 에스더 / 개신교수도원수도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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