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회상
기억이 먼 날에당신은 바다를 채우는 강한 빗줄기였습니다
빛의 송판 위에서 젊은 바람을 밀치고
얼음을 깨부수는 돌이었습니다
기억이 먼 날에
당신은 밤낮을 태우는 불꽃이었습니다
빨갛게 부어오른 그대의 마디 속에서
어둠은 달궈지고
빛이 지워지는 순간을 보며 눈 멀리
철딱서니 없는 그리움이 서걱대면
아픔으로 잘라냈습니다
철차에 매달린 한쪽 손을 놓치지 않으려
죽을 만큼 버티다가
당신의 머리는 시간의 물이 들고
당신의 몸은 날마다 탈색되어 갔습니다
그대의 뜰에서
문을 두들기는 어린 풀잎의 손들이
꽃을 향해 흔드는 달콤한 훈기
밥그릇에 정겨운 냄새가 입맛을 깨우듯
들리지 않는 그대의 숨소리는
해 뜨는 아침을 만나 큰 기지개를 켜고
머리가 지근거려도 토해 낼 수 없는 서러운 열
그대를 기억하는 아픔들은 새롭지 않습니다
그치지 않는 빗속에 여린 그 손목을 만지며
동백꽃이다가 민들레꽃이다가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일 수밖에 없었던
무거운 날들이 울다가도 웃을 수 있어서
그대는 그대에게 모질게 고개를 숙이고
운명에 맏기지 않았습니다
손정아 / 시인·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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