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직감 타령
그러잖아도 누군가 내 블로그에 들어와 하루에 159 글 다음날은 179개씩이나 읽는다. 누굴까? 궁금했다. 직감적으로 두 사람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의 추측은 빗나갔다. 아들 결혼식을 얼마 전에 끝내고 축 늘어져 있을 거로 생각한 지인이 내 글을 읽고 있을 줄이야!
예전에도 내 글을 읽는 조회 수가 갑자기 늘어서 누굴까? 오만 잡생각을 하며 ‘이제 나도 뜨나 보다.’ 착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빗나갔다. 전혀 엉뚱한 데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읽고 있었다.
‘내 직감이 맞아. 나는 못 속여.’
자만심에 가득 찬 직감 타령을 주절대며 살아온 나에 대해 실망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직감의 빗나가는 빈도수가 늘어간다. 최선을 다하고 물 흐르듯 세상 돌아가는 것에 맡기면 기대도 실망도 없을 텐데.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저울질하지 말자. 작업하며 글 쓰고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살자.
나는 책 사는 것을 꺼린다. 책이 집안에 쌓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빌려서 읽거나 아니면 읽은 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버릴 수 있을까를 눈이 가늘어져서 책장을 들여다보며 골똘히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쌓이는 것을 싫어하는 이율배반적인 삶이다. 일단 읽은 책 중에서 소설책들을 미련 없이 버렸다. 읽지 않은 책은 읽고 버리는 중이다. 책이 쓰레기통에 떨어지며 내는 소리는 집 앞에 수북이 쌓아 놓은 쓰레기를 군소리 없이 수거해가는 청소 트럭을 바라보는 후련함 같다. 책장이 훤해지고 깨끗해졌다. 홀가분하다.
오래전에 친구가 준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들었다. 누군가 ‘토지’를 읽고 노트에 베끼어 쓰면 글공부가 된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1993년 솔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다. 일일 연속극 중독에 빠진 듯 재미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읽을 것이 줄어든다는 아까움에 저녁에 한두 챕터만 읽는다.
작중 몇몇 인물들은 토지를 생명으로 믿고 성실히 살지만 몇몇은 음습한 지붕 안에서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며 최 참판 댁 재산을 노린다. 구수한 사투리와 생생한 언어 그리고 줄광대가 줄 위를 미끄러지듯 걷다가 아슬아슬 흥취를 돋구듯 문장과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토지’ 책 속에서처럼 우후죽순 생겨나 나를 당혹하게 하는 세상일에 좋지도 않은 머리 굴리고 상상하며 직감을 내세우지 말자.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기다리며 시간에 떠넘겨야겠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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