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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올브라이트가 못 이룬 북 비핵화, 틸러슨은 성공?

경질설 속 건재한 국무장관

파월, 강경 기류 속 6자회담 견인
올브라이트, 북·미 정상회담 합의
'틸러슨 이니셔티브' 앞길 주목


경질설에 시달려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19일 또 한번의 조그만 '정치적 승리'를 챙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를 지휘하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틸러슨 장관이 지지해온 수전 손턴 차관보 대행을 임명했다. 공석 9개월 만이다. 손턴 차관보 내정자는 그동안 중국과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취해 왔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내의 대중국.대북한 강경파의 견제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정부는 이달 초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겸 조지타운대 교수를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하고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을 요청했다. 빅터 차 대사 내정자 역시 틸러슨 장관이 그동안 주한 대사로 밀어왔던 인물이다. 지난 12일 한 세미나에서 "우리는 전제 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갖겠다"는 파격 발언 이후 백악관과 또다시 갈등을 빚었던 틸러슨 장관이 이번 인사만 놓고 보면 일단은 경질설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다.

제재와 압박과는 별도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해온 중국과 한국은 틸러슨 장관에게 우호적이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틸러슨 장관의 조건 없는 대화 발언이 나온 직후인 지난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미 양국이 대화와 접촉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길 바란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지난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틸러슨 장관이 대화 시작을 위한 강한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경질설에 대해 묻자 "미국 정부의 특정 인사를 언급하긴 곤란하지만"이라면서도 "계속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로 남았으면 한다"는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파월은 접시 돌리는 사람"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온건파를 대표하는 틸러슨 장관의 최근 행보는 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2001~2005년) 때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여러모로 연상시킨다.

2000년대 초반 2차 북핵 위기 당시 대북 강경파가 주류를 형성했던 부시 행정부에서 파월 전 장관은 비공식 대북 라인 가동 등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견인해 냈다. 2002년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백악관의 대북 접촉 반대 지침을 우회하기 위해 부하 직원을 통해 백남순 당시 북한 외무상에게 "내가 이곳에 있다"고 귀띔하도록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부시 1기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대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는 그의 자서전 『실패한 외교(Failed Diplomacy)』에서 파월 전 장관을 '접시 돌리는 사람'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막대기 위에서 돌고 있는 한 접시의 속도가 떨어지고 비틀거리면 얼른 달려가 균형을 잡은 뒤 또 다른 접시로 달려가는 역할을 파월 전 장관이 맡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파월 전 장관은 대북 정책에 있어 당시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가 북한이란 접시를 잘못된 방향으로 돌리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달려가곤 했다.

파월 전 장관은 최근에도 대북 압박을 지지하면서도 북핵 해법으로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일 국립외교원이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민주주의적 방법을 통해 외교력과 억제력을 계속 활용하면서도 평화를 위해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며 "대화로 우리가 잃는 것은 없다. 북한과 말한다고 해서 누가 손해를 보느냐"고 강조했다. 외교적 해법을 우선시하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과 유사한 맥락이다.

파월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에 대해서도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처할 것이라는 등의 발언에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첫 방미 당시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 파월 전 장관을 초청한 것도 그가 갖고 있는 공화당 내 영향력은 물론 문재인 정부와 결을 같이하는 대북정책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란 해석이다.

올브라이트 "트럼프 대북 정책 널뛰기"

'틸러슨 이니셔티브(Tilerson Initiative)'로 불리는 대북 접근법이 대북 강경 기류가 강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나름의 해법 찾기라는 점도 파월 전 장관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틸러슨 이니셔티브'는 최근 북.미 대화의 조건을 놓고 오락가락한다는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일관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핵심은 대화(협상)가 이뤄지려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이후 위협적인 행동(핵.미사일 도발)의 지속적인 중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북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이른바 '탐색적 대화'는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셉 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가 최근 "북한이 도발 중단을 선언하고 일정 기간(60일) 도발을 중단할 경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60일 플랜'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2월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과 지난 6월 북한에 억류됐다 귀환한 직후 숨진 오토 웜비어 사건 등 돌발 악재가 터지지 않았다면 북.미 간의 탐색적 대화가 실현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미 외교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와 관련, 조윤제 주미대사는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화를 얘기할 때 '토크(talk)'와 진지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협상 등 여러 가지 레벨을 생각할 수 있다"며 "(틸러슨 장관의 조건 없는 대화 발언이) 미국 정부의 새로운 변화라기보다는 계속돼 온 일관된 흐름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틸러슨 장관의 대북 접근법이 과연 파월 전 장관의 전임자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재임 당시와 같은 결말로 이어질 수 있을까. 빌 클린턴 2기 행정부(1997~2001년)에서 첫 여성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는 2000년 10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만나 북.미 관계 개선 방안을 협의했고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합의했다. 하지만 그해 말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북.미 정상회담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 역시 파월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에 비판적이다. 그는 지난 4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외교적 압박과 강화된 군사적 억제, 한국.일본과의 긴밀한 협력, 북한에 대한 보상 수단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북한과의 직접 대화 의지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과 만나는 것은 '영광(honor)'이라고 얘기했다가 고위 참모(틸러슨 국무장관)가 북한과의 외교적 해법(대화)에 대한 문을 열어놓는 순간에는 '대화가 답이 아니다'고 말했다"며 "전직 미국 대통령들과 그들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제외하고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는) 아무런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최대 변수는 역시 북한 호응 여부

틸러슨 이니셔티브의 성패는 역시 북한의 호응 여부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북한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9일 '우리의 핵 억제력은 흥정물로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미국이 일관성 없이 내붙였다 떼곤 하는 대화 간판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제 조건이 있는 회담을 제기하든 전제 조건이 없는 회담을 제기하든 미국이 노리는 것은 우리 국가의 핵 포기며 이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틸러슨 이니셔티브의 최종 목표인 비핵화 대화에는 나설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22일엔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와 관련,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뼈저린 후회를 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지난달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직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내년 신년사 등을 통해 대화 모드로 급속히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입장에서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과거보다는 협상이란 측면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 2월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는 게 북측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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