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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칼럼] 멋있는 삶 ②

김동길 선생님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분은 “시체는 세브란스병원에 기증하기로 서약했으며 나는 고별예배를 보고 장례식을 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분은 “끝나면 그냥 가는 거예요. 재산은 아직 분명히 얘기할 수 없지만 두 학교(연세대, 이화여대) 중 한 곳에 기증할 건데 아마 연세대에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요. 그 대학에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그분은 6.25 때 이야기를 하면서 “이북에서 넘어온 화가가 서울의 한 무허가 집에 살다가 미쳐 피란을 못 갔는데 살기 위해서 인민군을 도왔다네요. 돌아온 사람들이 그를 빨갱이로 몰아 쏴 죽였대요. 피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우리끼리만 피란을 가서 미안하다면서 껴안아줘야지 그를 그렇게 죽여서야 되겠어요?” 링컨이 위대한 것은 남부 반란 때문에 지독히 고생하고도 악의를 품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껴안은 점이라고 그분은 강조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유신 때 많이 당했어요.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이 뭡니까? 쿠데타가 지금 일어나면 또 반대해야지요. 하지만 우리를 감옥에 넣었다 해도 조국의 경제를 이만큼 만든 것은 인정해야지요.”

정치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분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어리석었지요. 대통령에 나가라는 정주영 회장의 말에 이끌렸으니까… 얼마 후에 그 어른이 찾아와서 ‘결혼하고 가정 가지고 애 낳고 살면 내가 200억원을 드리고 싶어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전 결혼도 필요 없어요. 그랬더니 며칠 후에 ‘이번 대선은 내가 나간다’고 하시는 거예요. 정치한 걸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그분은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정치판에 있었으니까 얘기하는 거예요. 정치판에서 시달리고 중상모략도 당하고 했으니까… 정치판에 없었으면 인생론 밖에 얘기할 수 없었을 거예요. 난 평소에 이렇게 말해요. 해방처럼 통일도 자고 일어나니 휴전선 밑으로 북한 동포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통일기금을 마련해서 통일할 생각을 하지 마라. 방이 큰 사람은 3명, 작은 사람은 2명씩 ‘동포들이여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하면서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랑을 가꿔줘야지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DMZ 일대를 유엔에 기증하겠다. DMZ 한가운데로 유엔본부를 옮겨 달라고 선포하자고요. 마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한국을 영세 중립국으로 만들자고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 국회의사당에서 연설을 할 때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과연 그것이 실현 가능할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하나의 이상국가가 될 것이다. 꿈은 언젠가는 이뤄질 수도 있으니까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생전에 안 이뤄지면 우리가 간 다음에라도 반드시 이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도 그저 좋기만 하다.

지난 5월에 한국에 나가서 김동길 선생님을 만났다. 지금도 거의 매일 강연과 방송스케줄이 있어서 우리 내외만 단독으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날이 5월 16일이었는데 마침 그날 저녁 6시부터 태평양위원회가 주관하는 인문과정 졸업식이 있으니 합석을 하라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는데 역시 원고는 없었고 아무 자료도 없이 그냥 했다. 약 50여 분간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 자신도 늙어서 언제 갈지 모르지만 가기 전에 고향(평안북도 맹산)엔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여전히 따뜻하게 우리 내외를 맞이하셨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저녁식사는 역시 녹두 빈대떡과 동치미 국물의 메밀냉면이었다. 예전에 김옥길 총장님이 만들어 주셨던 바로 그 맛이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엔 작은 음악회가 있었는데 젊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드뷔시의 ‘월광’은 때마침 창너머로 비치는 초여름 밤의 달빛과 잘 조화가 되었다. 나는 그분을 은사로 모실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고 개인적으로는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신 분이기도 하다.

세월이 가고 그분이 자꾸만 늙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 이젠 나도 그분의 뒤를 따라 몸을 추슬러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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