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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문학동네] 삼각형 위로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7/12 14:02

염미숙 수필가 /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염미숙 수필가 /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온종일 몸이 땅속으로 내려앉는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숨이 가쁘다. 마음의 답답함을 속이려 했건만 몸이 맥없이 솔직하다. 소통이란 마치 부지런히 달리는 혈관 속의 피와 같은 것. 관계의 단절은 병이 된다. 온몸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이 필요하다. 야단맞은 아이처럼 풀죽은 오늘, 나의 약함이 싫다.

불공정. 나는 이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저 나만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때때로 나는 공의를 강력히 요구한다. 그러다 다음 순간 공의 앞엔 나도 예외 없이 목을 뻣뻣이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렇다. 이렇게 투정 할 때조차 여전히 내겐 공정한 심판보다 긍휼이 더 필요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종종 주제넘다.

아침에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마당엔 꽃들이 다투어 피는데 집안에선 아직 추위가 느껴진다. 뒷마당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작은 삼각형 모양의 햇살이 카펫 위에 떨어진다. 문턱에 발을 올려놓으니 봄이 얼굴 위에 볕을 붓는다. 눈이 부셔 몸을 돌렸다. 오한이 느껴지는 등을 삼각형 안으로 밀어 넣으려 벽에 기대어 앉았다.

밑변 곱하기 높이 나누기 2. 그 삼각형 넓이 안에 내가 있다. 밑변 곱하기 높이. 빛이 사각형이라면 더 편하겠는데…. 이런 생각은 마치 남의 접시에 슬며시 수저를 얹는 것 같은 욕심이거나 허망한 것에 위로를 기대했던 나의 어리석음이다. 삶에는 종종 ‘나누기 2’가 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익숙했던 아이가 처음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를 보았을 때, 당황하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이상해! 이상한 영화야!”를 연발했다. 아이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앞으로 그 많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를 겪게 될 거야. 그러면서 자라게 되겠지.’ 복권 당첨이나 왕자와 공주의 결혼이 전쟁의 시작일 수도 있으니 아마도 해피엔딩이라는 말은 애초에 ‘내 소견이 원하는 바’를 뜻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뒷걸음질 같은 실패로 인해 다시 두어 걸음 앞으로 간다. 흘렸던 눈물로 인해 두어 치 깊이 있는 눈빛을 갖게 된다. 멸시 받아보았기에 사회적 약자를 귀중히 여길 줄 알게 된다. 그 모든 걸음을 지나왔건만 아직도 자라기 싫어하는 나는 나누기 2가 못내 씁쓸한 모양이다. 자기중심이란 참 끈질기기도 하다.

등 위에 떨어지는 빛이 따스함으로 바뀌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따스한 손. 그것은 말을 넘어서는 위로였다. “너는 나에게 소중하단다. 그동안 수고했다.” 위로받은 마음이 봄비에 젖은 새싹처럼 기운이 돋았다. 눈을 들었다. 구부렸던 몸을 펴고 기지개를 켰다. 자리에서 일어서다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훌쩍 자란 삼각형이 넉넉히 몸을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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