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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소셜워커의 세 번째 이야기] 날아라 컨버터블 카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7/16 13:51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나, 나도 그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지금의 직장으로 옮겨 일을 하는데 어느날 내 사무실 로비에 그동안 내가 찾아다니다 못찾았던 이 분이 앉아 계셨다. 좀 더 수척하고 야윈 얼굴에 세월의 흐름을 더욱더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다.

로비에 앉아 있는 이 분을 살펴보니 이 분 옆에는 기다란 막대기에 헝겊을 둘둘 감싸 들고 다니는데 막대기가 꽤나 무거워 보였다. 헝겊조각들로 둘둘 감싼 것이 궁금하기도 해 “저, 그런데 000씨 그 막대기는 뭐지요?”라고 물어보자 “음, 이 막대기는 송신탑입니다. 지금 내가 레이건 대통령하고 자주 통화를 하는데 이 송신탑을 세워놓으면 레이건이 직접 나와 통화해 정치를 상의하기도 합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리고는 이 분에게 “000씨, 저 알아보시겠어요?”라고 물어보니 “알지요. 레지나씨!”

“그렇군요. 세월이 지났는데도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라고 묻자 이 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잘 알지요. 레지나씨가 저에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티켓도 마련해 주셨잖아요.”

이 분을 사무실 로비에서 만나고 나서 이 분의 담당 카운셀러가 누군가 알아보니 가깝게 지내는 동료 쥬디였다. 나는 쥬디에게 내가 한국인이니까 네가 맡고 있는 저 분 케이스 나하고 교환하자고?” 쥬디는 내 말이 떨어지자 “그동안 이 분하고 대화가 잘 되지 않아 꽤나 불편했었는데 네가 한국말을 하니까 정말 잘 된 일”이라며 선뜻 내게 동의를 해주었다. 쥬디와 나는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찾아가 쥬디가 갖고 있는 Mr. 000케이스와 내가 갖고 있는 케이스 증서로 교환한다고 하니 마음씨가 좋은 디렉터는 “둘이 오케이면 자기는 노 프라블럼”이라고…

그 이후로 이 분과의 만남은 매주 진행되었다.

이 분은 시애틀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분에게 집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열심으로 서류를 작성했다. 몇달간의 노력으로 이 분이 정신 지체자인 점이 증명되고, 오랜 시간 동안 길거리를 떠돌아다닌 점과 특별히 몸이 건강하지 못해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점 등을 피력해 마침내 이 분이 우리가 운영하는 저소득층 아파트 그룹 홈에 입주하게 되었다. 그룹 홈에는 60여 분이 살고 있다. 몸이 불편하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또한 약물중독으로 어려운 분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 분에겐 담당하는 하우징 케이스 매니저들이 있어서 이 분들의 안전상태를 돌봐주며, 매일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할 수가 있고, 이 분들이 지내면서 자유롭게 다닐 수가 있는 곳이다.

이 분은 이곳에 살면서 매일 아침 어디론가 나갔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자기가 사는 방으로 돌아왔다. 이 분은 다닐 때마다 긴 가방과 이 분이 레이건 대통령과 직접 통신하는데 쓰인다는 긴 막대기도 함께 들고 다니면서...

언젠가 내가 사무실 로비에 앉아 리셉션니스트 점심시간을 갖게 해주느라 대신 프론트 데스크에 앉아 있는데 이분이 헐레 벌떡 로비로 들어서더니 “아니, 레지나씨 빨리 2층 출구를 열어주세요? 지금 레이건이 나를 만나러 헬리곱터 타고 도착했다고 하니 내가 레이건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 빨리 이층 출구를 여세요”라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아직 출구가 안 열렸으니 잠시만 기다리면 출구가 열릴 거예요. 그럼 레이건 대통령이 도착하는대로 알려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응대했다. 내가 프론트 데스크를 떠나 이층 내 사무실로 올라간 뒤 잠시 후 내려와보니 로비에 앉아 있던 000씨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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